3년만에 새 정규 앨범 ‘Dystopian’ 낸 3인조 밴드 이디오테잎
3인조 밴드 이디오테잎의 라이브 공연. 제제(왼쪽)와 디구루(가운데)의 신시사이저가 디알(오른쪽)의 드럼과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이들의 아드레날린 분비 촉진 음악이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되지 않는 이유는 청각적 무형물이기 때문이리라. 이디오테잎 제공
철컹철컹. 위이이이잉∼. 타다다다다닷! 거대 금속의 변신 소리가 아우성친다. 인간의 뜨거운 심장과 붉은 핏줄을 지닌 차가운 무채색 로봇은 무지개 뜬 은반 위를 질주한다.
3인조 밴드 ‘이디오테잎’(디구루 제제 디알)은 청각적 호모지나이저(homogenizer·서로 용해하지 않는 두 가지의 액체 물질을 강력하게 휘저어 유제(乳劑)로 만드는 기계)다.
인간 몰락의 괴이한 풍경은 신작에 헤비메탈 드럼을 수놓았다. 둘째 곡 ‘Dystopian’은 기타 대신 건반을 앞세운 파괴 전주곡. “디스토피안이란 아이디어를 내면서 저는 힙합 비트를 제안했는데 디알이 ‘아니다. (여기 맞는 건) 헤비메탈이다’ 하더군요.”(제제·신시사이저) “시국을 보면서 사람들이 피해를 봤음에도 화를 잘 못 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드럼으로 화 좀 내보자.”(디알·드럼)
늘 그랬듯 앨범에서 인간의 음성은 찾을 수 없다. “(가사로) 명확한 이미지를 제시하면 그 이상을 상상하기 어렵잖아요. 주제만 제시하고 듣는 이가 알아서 이입하며 공감하게끔 했죠.”(디구루·신시사이저)
일렉트로니카는 서구적 장르이지만 이디오테잎의 소리는 시뻘건 김치전골처럼 끓어 넘친다. 네덜란드 에이전트 제롬 윌리엄스는 “똑같은 악기를 쓰는데 이디오테잎에선 뭔가 다른 멜로디가 들린다”고 했다. 1970, 80년대 가요의 그림자가 짙다.
유럽서 돌아온 이디오테잎은 다음 달 13일 인천 송도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출연한다. “객석에 처음 ‘월 오브 데스(wall of death)’가 나타났으면 해요.”(디알) 월 오브 데스는 수백∼수만 관객이 홍해처럼 갈라졌다 음악의 절정에 맞춰 일제히 서로 몸을 부딪는 것. 주로 극단적 헤비메탈 공연에서 보이는 장면이다.
이디오테잎은 최근 뜻밖에 아이돌 기획사인 YG엔터테인먼트와 인연을 맺었다. 타블로가 수장인 YG 산하 ‘하이그라운드’와 계약한 것. “걱정도 있었지만 타블로 씨가 ‘돕는 역할만 하겠다. 보컬 없는 연주음악을 고집하는 점을 존경한다’고 해줘서 좋았어요.”
인류의 진보는 디지털 음악을 만들어냈고 서울은 이디오테잎을 낳았다. 어리석음의 늪에 여전히 몸을 담근 인류의 진보는 진화일까. 패러독스를 육화한 이디오테잎의 음악에 몸을 맡길 때다. 당신 역시 디스토피아를 만들어낸 백치(idiot) 유인원(ape) 중 하나이므로.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