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일
올해 밭작물은 시기를 조금씩 놓쳐 심었다. 작년 집중 호우에 밭 정리를 다시 한 탓도 있었지만 한창 농사 준비를 해야 할 3, 4월에 여행 등 이런저런 대소사가 많았기 때문이다. 시기도 늦고 유난을 떤 가뭄 때문에 고구마 일부가 말라 버렸고 밭 끝 쪽에 심었던 마늘은 거의 수확을 못 했다. 역시 두세 번 실패를 해야 감이 조금 생길 모양이다.
며칠 전 아래쪽 컨테이너 집에 사는 부부가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이 부부는 5년 전 밭을 사 일주일에 3일 정도 머물면서 아로니아를 가꾸고 있다. 결혼 안 한 막내아들 때문에 서울을 오가느라 아직 집을 짓지 않고 컨테이너에서 지내는 것이다.
결론은 아무리 농사일이 바빠도 주민들이 자주 만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 모인 다섯 집이 보름에 한 번씩 순번을 정해 저녁식사를 마련하기로 했다. 앞으로 참여하는 집을 늘려 마을 주민 모두가 모여 식사도 하고 막걸리잔도 나누면서 마을 분위기를 띄워 가기로 했다.
농사가 시작되면 바로 옆집 사람 얼굴 보기도 정말 힘들다. 매일 아침 5시면 이미 아침을 먹고 밭에 나간다. 서로들 멀리 떨어진 밭에서 어두워질 때까지 일을 하다 보면 일상에서 얼굴 마주치기가 힘들다.
일 년에 몇 번, 마을 대동회나 공동작업을 할 때 외에는 서너 사람이 함께하는 일조차 드문 것이 우리 농촌의 현실이다. 이제 58년 개띠이며 젊고(?) 의욕적인 이장님이 앞장서고 마을 주민들이 뜻을 함께하면 가족만큼 정겨운, 더 좋은 마을이 가꾸어질 것이다.
―이한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