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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내 영화 인생에 완성작은 아직 없어”

입력 | 2017-06-30 03:00:00

데뷔 60주년 맞아 특별상영전 갖는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배우 김지미씨




배우 김지미의 연기에 대한 열정은 나이와 관계없이 아직도 뜨거웠다. 그는 “요즘은 나처럼 나이 많이 든 배우들이 설 자리가 없어졌다”며 “많은 작품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한 배우가 좋은 연기를 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1957년 서울 중구 명동의 배꽃다방 인근. 당대 영화계를 대표하던 김기영 감독은 거리에서 17세 소녀를 만난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예쁠 수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감탄한 감독은 소녀를 자신의 영화 ‘황혼열차’의 주연배우로 캐스팅했다. 이후 소녀는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연기자로 살게 된다.

소녀의 이름은 배우 김지미(77). 60년 후 소녀는 백발의 원로가 됐다. 세월은 눈가를 주름지게 하고 머리칼을 희게 했지만 좌중을 압도하는 눈빛과 꼿꼿한 걸음걸이는 여전했다. “수백 편의 작품에 출연했지만 완성작은 아직 한 작품도 없습니다. 아직 배울 게 많은, 철 안 든 배우일 뿐입니다.” 29일 데뷔 60주년을 기념하는 ‘매혹의 배우, 김지미’ 특별전(한국영상자료원 주최) 개막식을 찾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비구니’ ‘토지’ ‘춘희’ 등 그의 대표작 20편을 상영한다.

영화평론가 주유신은 김지미를 이렇게 평했다. “한국영화의 상승기, 전성기 그리고 침체기를 관통한 배우.” 한국영화사(史)는 배우 김지미의 필모그래피와 궤를 같이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영화의 침체기였던 1970년대, 한 해 20∼30편씩 찍던 그는 수년의 공백기를 갖는다. “저희 같은 배우들이 설 자리가 없어진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배우라면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죠.” 이 시기 그는 다작 대신 연기의 폭을 넓혔고 ‘잡초’ ‘토지’ ‘육체의 약속’ 등으로 국내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배우로만 살던 그가 1984년 돌연 영화제작자로 변신한다. ‘지미필름’이라는 영화제작사를 만들면서부터다. “군사 독재 시대에 ‘이런 영화는 만들지 말라’며 심의, 검열이 심했어요. 여배우는 늘 기생이나 유흥가를 떠도는 여성을 연기해야 했죠. ‘혼이 담긴 영화’를 하고 싶어 스스로 제작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동시 녹음 이전에 왕성하게 활동했던 김지미는 영화 ‘길소뜸’(위 사진)에서 처음 목소리를 공개했다. 이 작품은 ‘한 배우의 리얼리티를 담은 영화’라는 평을 듣는다. ‘만추’를 리메이크한 ‘육체의 약속’(아래 사진)은 그의 대종상 여우주연상 수상작이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혼을 담아 연기하려던 그의 대표작으로는 ‘길소뜸’과 ‘티켓’이 꼽힌다. 두 작품에서 그는 각각 친아들을 앞에 두고 모성을 억누르는 중년 여성과 처연한 슬픔과 광기를 지닌 다방 마담을 연기한다. 모두 임권택 감독의 작품이다. 불교계 반발로 제작이 중단됐던 ‘비구니’(1984년)도 마찬가지다. “감독님은 배우를 마음껏 쓰는 감독이에요. 배우가 가진 재능이 100이라고 하면 보통 70∼80을 뽑아 쓰는데 임 감독 같은 분은 90 이상을 뽑아내죠. 그런 면이 나는 좋았습니다.”

인생이 곧 필모그래피인 그에게 영화는 어떤 의미일까. “영화는 사회 문제를 반영하는 거울일 수도 있고 시청각 교육 자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나와야 사회에 기여하는 것 아니겠어요?”

평소 ‘배우는 영화의 소재’라는 말을 즐겨 해온 그는 “60년간 어림잡아 700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700가지 인생을 살았다”고 했다. “안 해본 역할은 없지만 인생에 만족이 어디 있겠어요. 그간 행복하고 신나게 연기했지만 요즘은 불러주는 데가 없어 아쉬운 마음도 있어요.(웃음)”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