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미 서강대 국제한국학연구센터 연구교수 국어국문학
①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② 창문 너머 도망친 100세 노인
― ‘넘고, 넘어, 넘도록, 넘으니, 넘더라도, 넘으려면, 넘어도, 넘으므로, 넘는, 넘을지라도, 넘든지, 넘기….’
‘넘다’는 이렇게 복잡하게 바뀌면서 문장 안에서 다양한 기능을 한다. 같은 의미의 단어는 동일하게 적어야 의미 전달이 쉽다. 소리가 바뀌더라도 모두 ‘넘-’을 밝혀 적는 이유다. 우리는 이런 복잡한 변화형이 같은 단어라는 것을 정확히 안다. 심지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정확하게 구분해서 쓰고 있다. 우리들의 머릿속 규칙이 갖는 힘이다.
그러면 ②는 왜 ‘넘-’을 밝혀 적지 않는 것일까. ②의 표기가 올바르려면 아래 의미로 쓰여야 한다.
― 창문 너머에 도망친 100세 노인이 있다.
― 산 너머를 보려고 저 산을 넘어 간다.
여기서 ‘너머’는 ‘넘다’처럼 복잡하게 바뀌지 않는다. 국어에서 복잡하게 형태가 변하는 것은 동사나 형용사 그리고 ‘-이다’뿐이다. 명사는 언제나 같은 모양을 유지한다.
누군가는 이런 멋진 질문을 할 수도 있다. ‘너머’라는 단어 역시 ‘넘다’에서 온 것이 아닌가?
그렇다. 하지만 현재 그런 것은 아니다. ‘너머’라는 단어는 과거의 시점 언젠가는 ‘넘다’라는 단어로부터 나온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현재에는 ‘넘다’와 의미가 멀어져 새로운 단어가 되었다. 어원에서 멀어져 새로운 단어가 된 것은 어원대로 적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것이 맞춤법 원리다. 그래서 ‘넘어’와 ‘너머’를 구분해 적어야 하는 것이다.
중요한 문제가 하나 남았다. 컴퓨터 화면상의 빨강 줄에 관련된 것이다. 누군가는 ‘창문 너머 도망친 100세 노인’이 보이는 해석이 억지스럽다고 반론할 수 있다. 당연한 일이다. 이런 해석은 그리 일반적이지 않다. 일단 우리에게는 ‘넘어’라는 단어가 훨씬 더 익숙하다. 또 뒤에 연결되는 ‘도망친’이 어색함을 가중시킨다. ‘넘어 도망친’이라는 연결이 우리에게 훨씬 자연스럽다. ‘창문 너머, 도망친 100세 할아버지’처럼 숨표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다.
김남미 서강대 국제한국학연구센터 연구교수 국어국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