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어제 백화점과 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의 갑질에 대한 과징금을 지금의 2배로 올리기로 했다. 공정위가 발표한 ‘대규모 유통업법 과징금 고시(告示) 개정안’에 따르면 위법 행위의 경중에 따라 30∼70%인 과징금 부과율을 앞으로 60∼140%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예컨대 대형마트가 납품업체에 10억 원의 판촉비용을 떠넘겼을 경우 7억 원까지 매기던 과징금을 최고 14억 원까지 부과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백화점과 마트가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중소 납품업체를 상대로 벌이는 갑질 횡포를 뿌리 뽑겠다는 취지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동안 공정위 과징금 부과 사건이 법원에서 잇따라 패소한 것을 돌이켜보면 걱정이 앞선다.
2015년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액은 5889억 원이지만 기업에 부과했다가 직권 취소하거나 행정소송에서 지는 바람에 기업에 되돌려준 돈이 같은 해 무려 3572억 원이나 된다. 2012년 130억 원인 과징금 환급액이 2015년엔 27배로 급증한 것이다. 일단 과징금부터 때려놓고 기업 기강을 잡으려다가 법원에서 망신당한 것이다. 공정위가 소송에서 지면 소송비용뿐 아니라 부당 과징금 이자까지 돌려줘야 하므로 국가재정에 미치는 부담이 적지 않다. 오죽하면 국회예산정책처가 “공정위의 과징금 환급 규모가 너무 커 과징금 부과의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고 따끔하게 지적했을까.
사실 그동안 공정위가 대기업에 과징금 폭탄을 때리면 신바람 나는 곳이 로펌(법무법인)이었다. 공정위 출신 관료들이 포진한 로펌에서 해당 사건을 맡아 법원에서 승소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공정위가 과징금 방망이를 세게 휘두를수록 로펌에 근무하는 공정위 출신들은 반겼다. 전관예우의 또 다른 변종이다. 국고로 들어가야 할 돈이 로펌으로 빠져나가는 데 대한 공정위의 책임이 가볍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