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서울로 7017은 철거가 아닌 재생, 차로 대신 보행로, 수직이 아닌 수평적이라는 점에서 도시 재개발의 시대정신을 구현한 듯 보인다. 하지만 산책로를 찾는 사람들에게 신기함 이상의 감흥을 줄지는 의문이다. 그건 새 길에 얽힌 스토리가 없기 때문이다.
서울로 7017의 모델인 뉴욕의 ‘하이라인’은 완공되기까지의 과정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다. 하이라인은 맨해튼을 관통해 지상 9m 높이에 건설된 화물열차 선로였다. 뉴욕시는 도심의 흉물이 된 선로를 철거하기로 하고 1999년 공청회를 열었는데 뜻밖에도 철거를 위한 공청회에서 보존의 싹이 텄다. 행사에 참석했던 청년 둘이 ‘철거하기엔 아깝다’며 보존 운동을 해보자고 의기투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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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시민운동으로 완성된 하이라인과 달리 서울로 7017은 정부가 주도한 하향식 개발 계획이다. 하이라인 살리기는 숙의의 연속이었다.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보존한다면 무엇으로 활용할까. 비용은 어떻게 충당하고 운영은 누가 하나. 하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4년 9월 서울역 고가 공원화를 발표한 후 600억 원짜리 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돼 마무리까지 3년도 걸리지 않았다.
서울로 7017을 설계한 네덜란드의 비니 마스 씨는 국내 언론에 “(박 시장이) 오래 기다릴 수 없다. 실행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누차 당부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스피드에 놀랐다”고 했다. 그는 해외에서는 10년 정도 걸렸을 것이라며 “정해진 시간 안에 만들기 위해 놓친 부분이 꽤 있다”고도 했다.
‘놀라운 스피드’ 탓에 서울시민이 놓친 부분은 외국인 디자이너가 느낀 아쉬움에 비할 바가 아니다. 서울로 7017을 보며 “내가 살렸다”고 자부심을 가질 사람이 몇이나 될까. 들러리가 된 시민들은 “이명박은 청계천, 박원순은 서울로” 하면서 박 시장의 대권 행보를 궁금해할 뿐이다. 재생은 신축보다 어렵다. 이해관계가 더 복잡하기 때문이다. 서울시민들은 이견을 조율해 합의를 이뤄내는 소중한 배움의 기회도 잃어버린 셈이다.
도시의 경쟁력은 그럴듯한 랜드마크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그것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이 동네 주민들의 생활의 일부가 되고, 랜드마크의 완성이 개개인에게도 성취감을 줄 때 살기 좋고 남 보기에도 매력적인 도시가 된다. 세금이야 얼마가 들건 임기 안에 번듯한 랜드마크 하나 지어 이름 석 자를 남기고 싶어 하는 정치인들에게 하이라인의 주인공들이 남긴 말을 전해주고 싶다. “(공공 프로젝트는) 성공의 공을 많은 사람들에게 넘겨주면 줄수록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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