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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英 첩보원 로렌스와 현대 중동의 탄생

입력 | 2017-06-10 03:00:00

◇아라비아의 로렌스/스콧 앤더슨 지음·정태영 옮김/880쪽·4만 원·글항아리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고전영화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지만, 지금껏 국내에 소개된 책은 그가 쓴 자서전 ‘지혜의 일곱 기둥’뿐이다. 유명한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1888∼1935)를 조명한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번역 출간됐다. 국제분쟁 전문기자이자 소설가답게 저자는 8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이야기를 유려하고 흥미진진하게 이끌어간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제1차 세계대전 중 활약했던 영국의 첩보요원이다. 당시 서구 열강의 이권 다툼과 그에 따른 외교전, 첩보전의 소용돌이 가운데에서 저자는 로렌스의 삶을 살핀다.

고고학자인 로렌스가 영국의 첩보요원이 되었던 시기는 영국이 오스만 제국을 무너뜨리려 했을 때다. 이 과정에서 영국이 이용한 것은 아랍 민족운동이었다. 중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지닌 로렌스는 이 일에 적임자였다.

저자는 로렌스가 영국과 아랍 사이에서 보여주는 이중적인 모습을 꼼꼼하게 묘사하면서, 독일과 미국 첩보원들을 등장시켜 이들 간에 얽힌 첩보전을 보여줌으로써 소설을 읽는 듯한 흥미를 돋운다. 영국은 로렌스를 이용하고 로렌스 역시 이에 부응하는 듯하지만, 1916년 로렌스는 파이살 이븐 후세인의 조언자 역할을 하면서 아랍 반란을 일으킨다.

저자는 로렌스의 극적인 인생을 보여주면서 현대 중동이 탄생하는 과정을 겹쳐놓는다. 출생부터 불행한 죽음까지 로렌스의 개인의 인생을 충실히 서술하면서 유럽의 제국주의 책략으로 인해 고통받게 된 중동의 모습을 보여준다. 학살, 테러, 종교분쟁, 독재정권 등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중동의 상처의 연원을 헤아려볼 수 있는 책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