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가야사 복원’ 지시에 학계 두갈래 표정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가야사(史) 연구와 복원을 지시한 것에 대해 학계에서는 연구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와 유적 복원 속도전이 돼서는 안 된다는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학계의 가야사 연구 현황과 이후 방향을 알아본다.
○ 호남 동부도 가야 영역으로 밝혀져
1977년 경북 고령군 지산동 44호, 45호 고분의 발굴은 가야사 연구의 전환점이 됐다. 이 고분들은 우리나라 최초로 발굴된 순장묘로 뼈와 함께 토기, 철기가 대규모로 쏟아졌고, 이를 계기로 ‘가야 고고학’이 성립됐다. 비슷한 시기 일본서기를 우리 입장에서 해석한 천관우(1925∼1991)의 연구도 나왔다. 1990년대 중반에는 대왕(大王)이나 하부사리리(下部思利利)라고 새겨진 대가야계 토기가 발견돼 가야의 정치 체제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기도 했다.
그러나 김태식 홍익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이 지역이 전남 여수, 순천, 광양 일대일 것이라고 봤고, 2006년 순천에서 가야 고분군이 발굴되면서 설득력을 얻었다. 근래에는 전북 남원 장수 진안 임실 고분군이 가야의 것으로 드러났다.
김 교수는 “삼국사기에 우륵이 지은 가야금 곡 12개의 이름 중 10개는 사실 지명(地名)인데 그중 4개는 호남 지방”이라고 말했다.
○ 섣부른 복원보다 발굴과 연구가 먼저
가야 유물들은 수준 높은 철기문화를 보여준다. 1번 사진 경북 고령군 지산동 32호분에서 출토된 철 갑옷과 투구는 가야의 철기가 주목받는 계기가 됐다. 2번 사진 국보인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5세기)에서는 말까지 철갑을 두른 걸 볼 수 있다. 3번 사진 금동관(32호분 출토)은 고대국가로 나아가던 대가야의 위상을 보여준다. 동아일보DB
문화재청에 따르면 산하 가야문화재연구소가 현재 가야사 관련 발굴조사 중인 곳은 경남 김해 봉황동 유적과 창녕 교동·송현동 고분군이다. 금관가야의 왕궁 추정지로 여겨지는 봉황동 유적은 2015년 9월부터 발굴하고 있다. 비화가야 최고지배층이 묻힌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2014년 3월부터 발굴조사가 진행 중이다.
학계는 가야사 복원은 발굴조사와 같은 기초연구가 제대로 이뤄지는 게 우선이라고 보고 있다. 섣부른 복원은 유적의 의미를 훼손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고고학자는 “기초연구에 비해 복원에 더 중점을 두면 속도전 논란을 빚은 경주 월성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고대사학회장인 하일식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역사 연구가 현실문제 해결의 도구가 돼서는 안 된다”며 신중한 접근을 강조했다.
조종엽 jjj@donga.com·김상운·김배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