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희 채널A 산업부 기자
북유럽 아니면 장사가 안 되는 시대다. 포털 메인 화면에는 ‘북유럽 스타일로 꾸민 25평 신혼집’ 부류의 포스팅이 자주 걸린다. 그만큼 관심이 많은 주제이기 때문이다. 대개 리모델링 전후 사진이 함께 올라오는데, 많은 사람이 원래 있던 체리색 몰딩이나 꽃무늬 벽지에 대한 혐오감을 숨기지 않는다. 옥색 시트지가 발린 싱크대는 거의 재앙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거실 한가운데 소파와 TV를 배치한 전형적인 한국식 아파트에서 몰딩과 벽 색깔만 하얗게 바꾸면 그게 정말 북유럽 스타일이 되는 것일까. ‘끔찍한 체리색 집’을 고친 뒤 북유럽풍으로 꾸몄다는 인테리어는 예쁘긴 해도 북유럽적이라 하긴 어색하다. 이케아 6단 서랍장부터 국민 현관등, 몬스테라 화병까지 북유럽을 표방한 소품들이 집집마다 똑같이 놓여 있어서 오히려 몰개성적인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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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북유럽이란 단어가 몇 년간 반복되며 식상하단 느낌이 슬슬 들자 최근엔 ‘휘게(Hygge) 라이프스타일’이란 용어가 나왔다. 북유럽 사람들처럼 소박함, 일상의 행복을 추구하는 삶이라는데, 정확히 번역되는 한국어도 없는 이 낯선 덴마크어가 올해 최신 트렌드로 꼽힌다. 아니나 다를까 ‘휘게 라이프스타일을 만끽할 수 있다’는 아파트 분양광고와 ‘휘게식’임을 강조한 마사지 오일 따위가 정신없이 쏟아진다.
패션에서 ‘st’는 카피본을 가리키는 속칭으로 쓰이는데 요즘 북유럽 현상은 ‘st’와 많이 닮았다. 카피 제품들은 이자벨 마랑의 블라우스를 베낀 뒤에 ‘이자벨 마랑 st’라며 판매한다. 본질은 짝퉁인데 ‘그런 스타일’이라고 우아하게 돌려 말한다. 도 넘은 북유럽 마케팅에도 진짜는 없는 것 같다. 그저 슬쩍 흉내 낸 ‘북유럽st’만 보인다.
좀 더 걱정스러운 건, 이 요란한 마케팅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속마음엔 ‘촌스러운 꽃무늬 벽지’에 대한 불만처럼 지금 우리 것에 대한 거부감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이들이 한국사회의 대척점에 북유럽을 두고 이상적 탈출구로 간주한다. 몇 년째 트렌드 최전선을 지키는 이른바 ‘북유럽 스타일’이 마냥 편치만은 않은 이유다. 본질은 흐려지고 획일화된 유행과 맹목적인 동경만 도드라진다. 지금 한국의 북유럽은 북유럽식 주방 매트와 먼지떨이로만 존재하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
박선희 채널A 산업부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