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순 단국대 교수 논문
일본 헌병대가 1914년 10월 24일 작성한 정보보고 문건이다. 헌병대는 “장세담의 용건은 청년들을 만주에 있는 신흥무관학교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장세담은 단국대를 설립한 독립운동가 범정 장형 선생(1889∼1964)의 가명. 그는 서울에서 만주에 이르는 일제의 촘촘한 감시망을 뚫고 신흥무관학교 입학생 모집 임무를 수행했다. 그의 활약에 힘입어 1914년 보성전문학교 재학생이던 김연우와 고정식이 신흥무관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우당 이회영 선생(1867∼1932)을 비롯한 신민회원들이 경술국치 이듬해인 1911년 중국 지린(吉林) 성 류허(柳河) 현에 세운 신흥무관학교는 무려 3500명의 독립군을 양성한 항일 무장투쟁 전초기지였다. 청산리,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독립군 주요 간부들도 이 학교 출신이다. 그런데 역사학계에서는 엄혹한 일제강점기 신흥무관학교가 많은 학생들을 어디에서 어떻게 모집했는지 미스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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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 과정에서 미곡상과 무역상, 숙박업자 등으로 위장한 안동현 내 비밀 연락거점의 역할이 중요했다. 이들은 한반도에서 넘어온 입학생이나 독립운동가들을 신흥무관학교와 연결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예컨대 경기 용인에서 태어난 유학자 맹보순은 1910년 안동현으로 망명한 뒤 상점을 운영하며 신흥무관학교 연락책으로 활동했다. 당시 안동현에는 1911년 일본 동양척식회사의 토지 강탈을 계기로 이주한 한인들의 집단 거주지역이 있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