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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민간기업에 노골적 압박” 볼멘소리

입력 | 2017-05-25 03:00:00

“실적 치우치면 땜질식 확충 우려… 일자리 창출 여력, 업종따라 달라
일률적으로 요구하는건 비현실적
정부가 추진하는 ‘비정규직 제로’… 비정규직 개념부터 명확히 해야”




재계는 대통령이 일자리 현황판을 통해 개별 대기업의 일자리 동향을 체크하겠다는 구상에 대해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5대 그룹 관계자는 “일자리 창출이 중요하다는 건 알겠는데 기업 대표가 각 부서에 영업실적을 쪼는 것처럼 원색적 압박을 가하겠다는 것 아니냐”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실적 위주로 가게 되면 양질의 일자리보다는 쉽게 늘릴 수 있는 일자리를 ‘땜빵’식으로 확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숫자에 치중한 정책이 나오다 보면 오히려 ‘좋은 일자리’ 창출에는 도움이 안 될 것이란 얘기다.

산업 특성에 따라 일자리 창출 여력이 다른데도 같은 기준을 들이대려 하는 것도 기업들을 곤혹스럽게 하는 부분이다. 대형 마트가 점포 하나를 내면 당장 수백 명을 추가 고용하지만, 석유화학 기업은 공장을 증설하더라도 운용 인력이 크게 늘어나지 않는다.

일자리 현황판에 게시될 ‘비정규직’ 개념도 논란거리다. 고용노동부는 이미 대기업들의 고용형태를 파악하기 위해 ‘고용형태 공시제’를 운영하며 현황을 웹사이트에 공개하고 있다. 고용형태 기준은 ‘기간에 정함이 없는 근로자’와 ‘기간제 근로자’다. 기업들은 무기계약직을 포함한 전자를 정규직으로, 후자를 비정규직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노동계에서는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보지 않는다. 고용 안정성은 있지만 임금과 복지 혜택 등은 비정규직 수준이라는 이유에서다. 반면 대기업은 하도급 사원 등 간접고용을 비정규직으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노동계와 기업이 발표하는 비정규직 통계는 제각각이다.

실제 이마트는 10여 년 전부터 ‘비정규직 제로’에 근접한 정책을 자랑해 왔다. 이 회사의 올해 1분기(1∼3월) 기준 비정규직(기간제 근로자) 비중은 0.63%다. 그러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보고서에서 나온 이마트의 비정규직 비중은 지난해 초 기준으로 30.9%에 달한다. 협력업체 판매사원까지 모두 비정규직에 넣은 결과다.

기업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비정규직 제로’의 개념도 명확하지 않다고 볼멘소리를 낸다. 인천공항공사 사례처럼 용역업체 직원을 포함한 개념이면 일부 업종의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조선, 자동차, 화학, 철강 등 장치산업은 사내 하도급을 일정 부분 활용해야 하는 산업 구조를 갖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배를 만들다 보면 현장 근무 인력 중 협력업체 직원이 본사 소속의 4∼5배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일감이 일정하지 않은 수주 산업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규직 전환에 집착하기보다 헌법적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원칙을 지키는 차원에서 근로조건을 개선하되 직무별 차이에 따른 고용 형태는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우선 비정규직 개념부터 명확히 정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새 정부가 만들겠다는 81만 개 공공부문 일자리 중 공무원을 제외한 사회서비스 일자리는 60여만 개다. 배정된 재원을 이 숫자로 나누면 1인당 월 100만∼130만 원인데 이는 무기계약직 수준”이라고 했다. 그는 “정부가 개념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국민이나 노동계는 결국 기대만 하다가 실망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현수 kimhs@donga.com·이샘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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