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지도자일 땐 명분-이념 중요해도 통치자 되고 나면 철저히 부국강병에 초점 맞춰야 이념이 강조되면 통합의 목표가 배제될 수 있어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건명원 원장
‘대한민국은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한다.’ 헌법에 국가의 원수로 규정된 대통령은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확보할 것을 사명으로 가진 사람이다.
이 사명을 달성하려면 반드시 두 가지가 필요하다.
동네에서 살인은 중죄지만, 전쟁터에서 적군을 죽이는 것은 큰 명예다. 폭력을 위임받지 않은 국가 내의 작은 조직이나 개인들과, 폭력을 위임받은 국가 사이의 차이다. 권력을 다툴 때는 내 울타리 밖에 있던 반대 세력조차도 권력을 잡고 나면 내 뜰 안에 들어와 있다. 반대자도 품을 수밖에 없는 운명 속으로 빠진다. 울타리가 갑자기 넓어져 버렸다. 이 차이를 분간하지 못하면 정당 지도자에서 국가 경영자 혹은 통치자로 변신하지 못한다.
우리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신흥국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정치 발전과 경제 발전을 동시에 이룬 나라다. 하지만 ‘정치’ 부문에서의 발전은 경제에서의 그것보다 더 울퉁불퉁하고 전진과 후퇴에 질서가 없다. 끝이 좋은 대통령을 갖지 못한 것만 봐도 안다. 그것을 실패라고 말할 필요까지야 없겠지만, 왜 모두들 끝이 안 좋았을까.
정치 지도자에서 국가 경영자 혹은 통치자로 변신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정치는 명분과 이념으로 덤비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다. 선명성도 높이고 전투력도 배가시킬 수 있다. 세를 결집시키는 데에도 효율적이다. 그렇게 해서 권력을 잡는 데 성공하면 그 승리에 취해 변신을 시도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사용했던 그 방법을 그대로 계속 사용하다가 차원이 다른 국가 레벨의 경영에는 실패한다.
정치 지도자일 때 명분과 이념으로 재미를 보았더라도 국가 지도자는 명분과 이념을 버리고 철저히 부국강병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순수한 명분을 버리고 잡스러운 이익 쪽으로 무게 중심을 이동해야 한다. 명분은 구분의 정치력이다. 이익은 통합의 토대다. 이념과 명분이 강조되는 한, 통합이라는 구호가 실제로는 또 하나의 배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명분은 순수하고, 이익은 잡스럽다. 당연히 통치자는 스스로를 더럽히고 욕보이더라도, 국민들은 깨끗하고 명예롭게 살도록 해주는 존재다. 자기를 순수하고 명예롭게 만들려고 애쓰기보다 오히려 잡스러워진 손에 그 명예와 순수를 담아 국민들에게 쥐여 주려는 존재다. 옛날에도 통치자들이 자신을 고(孤), 과(寡), 불곡(不穀), 짐(朕) 등과 같이 아주 비루한 언어로 칭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통치자가 되는 순간 그 사람은 명분을 공유하던 정치 동지들과 혼자 속으로라도 달라져야 한다. 통치자로 변신하면서 하지 않으면 안 될 심리적 결별이다. 그 사람은 고독하다.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건명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