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 후보가 어제 선거운동 개시 첫 유세지로 대구를 찾아 “영남도 호남도 박수치는 승리를 만들어줬으면 한다. 통합을 시작하는 새로운 역사의 문을 대구가 열어 달라”며 ‘통합’을 강조했다. 분열과 대결을 부추긴다고 지적받아 온 ‘적폐청산’이라는 단어는 꺼내지 않았다. 사실상 폐기한 것이다.
그동안 문 후보는 말끝마다 ‘적폐청산’을 강조했다. ‘친일부패 기득권 세력’을 그 대상으로 지목해 아직도 친일 청산이 안 됐다는 납득할 수 없는 논리를 갖다 댔다. 권력기관과 재벌 등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하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 첫해부터 강력하게 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국민통합도 적폐청산의 전재 아래 가능하다고 했다.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폐단은 도려내야겠지만, 이것이 내 편 아니면 모두 적으로 돌리는 ‘편 가르기’ 수단이 돼서는 곤란하다.
문 후보는 구 여권 세력과 경쟁 후보를 적폐세력으로 모는 것은 물론이고 대연정을 제안한 같은 당 안희정 충남지사에게까지 “어떻게 적폐청산 대상과 손을 잡느냐”고 몰아세웠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에게는 “적폐세력의 지지를 받는 것이 사실 아니냐”며 지지자들까지 적폐로 몰아세웠다. 오죽하면 안 후보가 “문 후보 캠프에도 박근혜 정부 사람이 많은데 문 후보가 손을 잡으면 전부 죄가 사해지느냐”고 반박했겠는가.
진정한 통합이란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반대자와도 소통하고 설득하며 함께 국정 운영에 동참토록 하는 것이다. 문 후보는 어제 적폐청산만 말하지 않았을 뿐 역사를 바로 세우는 ‘정의로운 대통령’, 촛불민심을 받드는 ‘광화문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정의와 불의, 촛불과 태극기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가 여전하다.
문 후보가 진정 통합의 대통령이 되려면 약속으로 보여줘야 한다. 무엇보다 누가 돼도 피할 수 없는 여소야대(與小野大) 대통령으로서 반대세력을 어떻게 끌어안고 국정을 이끌어갈 것인지, 구체적인 연정 또는 협치(協治) 구상을 밝혀야 한다. 그래야만 그가 목표로 하는 ‘사상 최초로 전국적 지지를 받은 대통령’까지는 못 돼도 ‘국민 반쪽의 대통령’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