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전사자 ‘챈스 일병의 귀환’… 운구여정 존엄, 그 자체 ‘죽음의 계단’ 오른 9·11 소방관… 총성 향해 몸 던지는 경호 훈련 역사·정통성 자랑스럽게 여겨 先公後私 살릴 대통령 나와야
박제균 논설실장
2009년 개봉된 ‘챈스 일병의 귀환’(원제 ‘Taking Chance’)의 한 장면이다. 영화는 2004년 이라크에서 전사한 19세 챈스 펠프스 일병의 시신을 고향인 와이오밍까지 운구하는 미국 내 3000km의 여정을 담고 있다. 전사자 운구의 행로는 존엄, 그 자체다. 관이 비행기에 들고 날 때마다 중령의 거수경례에 공항 하역 직원은 손을, 조종사는 모자를 가슴에 얹는다. 관이 경유지에 머무는 동안 중령은 호텔에 가지 않고 관 옆에서 밤을 보낸다.
영화에 챈스 일병은 등장하지 않는다. 중령도 생전의 챈스를 본 일이 없다. 단지 동향이라는 이유로 운구 업무에 자원했다. 운구 여행 막바지에 ‘전장을 피해 행정 업무를 자원했다’며 자책하는 중령에게 향군 관계자는 이렇게 위로한다. “당신 같은 증인마저 없다면 전사자들은 모두 사라져버릴 것이다.”
미국에선 공항 대합실 같은 공공장소에서 생면부지의 군인들에게 박수를 치고, 자리를 양보하며, 돈을 대신 내주는 일도 허다하다. 세계 어디선가에서 항상 전쟁 중인 ‘전쟁 국가’로서 군인 우대는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다. 그러나 ‘MIU’(Men In Uniform·제복 입은 공무원)를 존중하고 그들의 희생에 국가적 조의를 표하는 데는 안보와 치안 유지 차원을 넘어서는 뭔가가 있다. 그것은 국가 공동체 속의 개인과 개인을 이어주는 접착제 역할이랄까. 공동체 유지에 없어서는 안 될 ‘제1원소’ 같은 것이다.
9·11테러 때 현장에 출동했던 미국 소방관 343명이 희생됐다. 이들은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불에 타 무너지는 건물 위층으로 향하는 ‘죽음의 계단’을 올랐다. 먼저 오른 소방관이 희생됐지만, 누구도 아래층으로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국가가, 정부가 뒤에 남겨질 가족을 돌봐줄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죽음의 행진’이었다.
가까운 후배가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겪은 일이다. 속칭 ‘노인 유모차’로 불리는 보행 보조기에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앉히고 가다가 넘어졌다. 순식간에 행인 10여 명이 자신들을 둘러싸 도와주려고 해 놀랐다고 한다. 애국심과 공동체에 대한 자긍심 고양은 자연스럽게 봉사와 희생정신으로 귀결된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결여되어 있고, 그래서 가장 필요한 게 바로 이것이다.
위기다. 이미 미국과 일본은 한국 내 자국민에게 유사시에 대비하라는 비상벨을 울렸다. 미국 시민권자는 주한 미국대사관으로부터 비상시 15kg 이내로 짐을 꾸리고, 긴급연락망을 등록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만큼 상황이 위중하건만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 중 자신보다 나라를 중히 여기는 이가 보이지 않는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총성이나 포성이 울리면 반대편으로 몸을 피하게 마련이다. 청와대 경호실에선 이런 본능을 거스르는 훈련부터 한다. 총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던지는 ‘조건반사’ 훈련이다. 자신의 몸이 인간방패가 돼 대통령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대통령이란 이런 존재다. 그 대통령을 뽑는 날이 20일 남짓 남았다. 오늘도 묵묵히 나라를 위해 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위해 몸을 던지는, 그런 대통령을 보고 싶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