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최지훈 호호스프 대표
우리 집은 냉장고가 세 대다. 김치냉장고와 양문형 냉장고 그리고 대형 냉동고다. 두 분 사시는 집치고는 과한 규모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남은 음식 하나 넣어둘 자리가 없다. 사실 우리 집 냉장고는 오랜 이슈거리다.
“냉장고에 자리가 부족하면 내용물을 처리해야지 냉장고를 새로 사는 게 어딨어요?” 그렇게 시작된 냉장고 이야기는 벌써 3년이 넘게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치운다 말씀은 하지만 냉장고는 변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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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냉장고는 아침 방송과 직결된다. 언젠가 집이 온통 매실로 가득 차던 때가 있었다. 한땐 각종 해독주스 얼린 덩어리들이 터질 듯 들어차 있었고, 현미, 돼지감자, 울금, 연근, 홍합, 최근에는 코코넛오일도 있었다. TV를 없앨 수는 없다. 다 먹어버리자. 냉장고에 모아 두는 어머니보다 먹어 치우는 내가 더 빠르다면 승산이 있다. 냉장고에 가득한 재료를 잡히는 대로 꺼내와 끼니를 때우기 시작했다. 변한 건 건강식으로 가득 찬 내 식단뿐이었다.
나는 어머니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였다. 어머니는 진리였다. 그러던 어머니가 틀리기 시작했다. 중학생이 되던 쯤인가. 머리가 굵어지며 어머니의 오답을 종종 알아채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진리였던 어머니께서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깨달음은 묘한 배신감을 불렀고 반항으로 이어졌다. 어머니의 말씀은 틀린 것 투성이였고 세련되지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과도기는 짧았다. 금방 어른이 되었고 어머니는 다시 진리가 되었다. 날뛰던 손오공이 부처님 손바닥 위를 벗어나지 못한 스스로를 보았을 때 심정이 이랬을까.
스무 살. 공부 열심히 하라는 어머니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공부는 평생 하는 것이므로 지금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는 이상한 주장을 폈었다. 서른이 넘은 지금 공부가 주업이던 학생 시절이 사무치게 그립다. 해야 할 공부, 하고 싶은 공부가 넘쳐나지만 시간과 체력이 20대와는 다르다.
독립해 살게 되며 식사를 챙기기 어려웠다. 만들어진 음식을 사서 데워 먹는 날이 많았다. 식재료를 일일이 챙겨 손질해가며 조리할 여유가 나질 않았다. 어머니의 냉장고는 과연 ‘다 쓸 데’가 있었다. 한가득 차 있는 그 냉장고는 내 보물창고가 되었다. 절대 나가지 않을 것만 같던 냉장고 안의 저장품들이 나를 위해 비워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모두 꺼내 주셨다. 어머니의 큰 그림을 이제 겨우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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