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맨 끝줄 소년’의 박윤희-전박찬
배우 박윤희(왼쪽), 전박찬은 무대에서 매우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지만 묘하게 닮은 듯한 느낌을 준다. 얼핏 보기엔 신장 차이가 나는 것 같았지만 이들은 “마주 보고 서면 키도 비슷하다”며 웃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헤르만 역의 박윤희(50)와 클라우디오를 연기하는 전박찬(35)을 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이들은 매진 소식에 “감사하면서도 두렵다”고 했다. 2015년 초연한 이 작품은 뇌종양으로 지난해 세상을 뜬 고 김동현 연출가(당시 51세·극단 코끼리만보 창단)의 유작이기 때문이다. 두 배우는 초연도 함께 했다. 고인은 올해도 연출가로 이름을 올렸고 당시 드라마투르그(희곡 연구 및 자료 조사, 작품 해석을 맡는 사람)였던 김 연출가의 아내 손원정 씨가 올해 ‘리메이크 연출가’로 데뷔했다.
이들은 이전보다 유연해지고 더 단단해진 것 같단다.
“초연 때는 책상 위나 바닥에 드러누워 수업을 듣는 등 반항적이었어요. 이번에는 그런 장면 없이 감정을 가두고 더 차갑게 연기해요. 클라우디오를 소름 끼치는 존재가 아니라 보듬어주고 싶은 아이라는 느낌을 주려 애쓰고 있어요.”(전박찬)
이들은 김 연출가가 다시 작품을 올려도 이렇게 요구했을 것 같단다. 손 연출가는 멈칫하는 배우들을 다독이며 한 걸음씩 나아가도록 독려했다. 작품은 악기의 줄이 하나하나 팽팽하게 조여지는 듯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권력 관계의 전복, 극적으로 터져 나오는 인간의 이중성 등을 그리며 짜릿한 흥미로움을 자아낸다.
이들은 김 연출가를 시인처럼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면서도 책임감 강한 이로 기억했다.
“10년 전에 김 선생님을 만났는데 ‘배우로서 네 세계관은 무엇이니?”라고 물어보셨어요. 누구도 하지 않았던 질문이었죠.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깨치고 싶다고 말씀드리자 ‘그거 알 때까지 나랑 놀래?’라고 하셨어요.”(전박찬)
박윤희는 젊은 시절 한 연출가로부터 배우에 맞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1년간 조연출을 하다 무대를 떠났다. 하지만 쉬지 않고 연극을 보며 감각을 유지했고, 다시 배우로 돌아왔다. 2007년에는 ‘심판’으로 동아연극상 유인촌신인연기상을 수상했다. 그는 “어딘가에 내 무대가 있을 거라 믿었다”며 “예전에는 이름 석자를 남겨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지금은 후배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멍석을 깔아주는 선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해맑은 얼굴의 전박찬은 도발적이면서도 똑 부러지는 연기로 주목받고 있다. 그는 “즐거움과 위로를 건네는 배우가 되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30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1만∼5만 원. 02-580-1300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