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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판세도 흔드는 여론조사… 불리하면 음모론까지 들먹

입력 | 2017-04-08 03:00:00

[토요판 커버스토리]출렁이는 지지율에 일희일비





5·9대선을 앞두고 대선 후보 지지율 조사가 쏟아지고 있지만 여론조사 기관마다 내용이 제각각이다. 유권자들 사이에선 “대체 어느 조사가 맞고, 어디까지 믿어야 하느냐”란 목소리가 나온다.

○ 여론조사 믿어도 될까

일부 대선 후보는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공개적으로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7일 페이스북에 “왜 이런 조사가 되는지 짐작은 가지만 참 어이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날 한국갤럽이 4∼6일 전국 10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대선 후보 지지도에서 자신의 지지율이 7%로 다른 기관의 조사보다 낮게 나타난 데 따른 것이다. 다른 후보들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오도록 여론조사를 진행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깔려 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측도 여론조사 결과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다자 대결에서는 여전히 문 후보가 선두를 지키고 있지만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양자 대결 시 문 후보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에게 뒤진다는 결과가 나오면서다. 문 후보 측은 “질문과 표본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후보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자신에게 불리한 여론조사 결과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기 위한 측면도 있지만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도 작용한다. 비슷한 시기에 조사했는데도 누가 조사하느냐에 따라 지지율이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시각이다. 실제로 3일 이후 발표된 전국 단위 대선 후보 지지도 여론조사 9건을 분석해보면 조사기관에 따라 다자 대결에서 문 후보의 지지율은 7.6%포인트, 안 후보는 13.3%포인트 차이가 나는 등 천차만별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런 이유만으로 여론조사 결과를 ‘믿기 어려운 숫자놀음’으로 치부하긴 어렵다고 지적한다. 유·무선 전화조사 비율 등 조사 방식에 따라 지지율에 차이가 생기는 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다만 일부 여론조사기관이 적은 비용의 자동응답시스템(ARS) 여론조사를 남발하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조사 문항도 중요한 변수로 꼽힌다. ‘선호하는’ 후보를 묻느냐, ‘지지하는’ 후보를 묻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2002년 대선에서 여론조사를 통해 후보 단일화를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몽준 전 의원 측은 문항을 “누구를 지지하느냐”로 할지, “누가 더 경쟁력이 있느냐”로 할지를 놓고 10여 일간 대치하기도 했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여러 조사기관의 여론 결과를 비빔밥식으로 섞어 보면서 차이가 나는 이유를 다른 데서 찾으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 “추세 반영하는 참고자료일 뿐”

다만 전문가들은 최근 들어 여론조사의 신뢰도가 낮아지고 있다는 흐름에는 공감한다. 가장 큰 이유로는 응답률 하락을 꼽는다. 스마트폰 보급으로 여론조사 전화를 ‘스팸전화’로 차단하는 사례가 늘면서 응답률이 낮아지는 것이 여론조사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여론조사기관들은 통상 무작위 추출 방식으로 1000∼2000명의 조사 대상을 선정한다. 전체 유권자들의 성별, 연령별 분포 비율 등 인구학적 특성을 반영한 ‘샘플’의 의견을 물어 민심의 흐름을 파악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직장인이나 학생 등 젊은층 대다수는 여론조사에 응하지 않고, 간혹 응답을 하는 젊은층은 특정 후보의 적극적인 지지층인 경우가 많다. 이들의 의견이 과다하게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는 실제 민심과 큰 간극을 보일 수 있다.

응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전화를 받지 않은 조사 대상에게 재차 전화해 답변을 요구하는 ‘콜백(call back)’이 필요하지만 제한된 비용과 조사 기간 탓에 대부분의 기관은 이를 시행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조사 대상이나 응답률이 일정 기준 이하인 여론조사는 공표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여론을 더 정확히 반영하기 위해 새로운 조사기법을 시도하는 것을 억누를 순 없지만 기본적으로 응답률이 조사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유권자들이 지지율 자체보다는 추세를 참고하는 정도로 여론조사 결과를 활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일권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는 “여론조사에는 한계가 분명한 만큼 과도한 의미를 부여해선 안 된다”며 “수치보다는 흐름을 읽는 참고자료로만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역대 대선서도 여론 파악 ‘헛발질’… 선거 당일 오후4시 조사도 틀려


대선을 한 달 앞두고 여론조사 민심이 요동치는 것은 올해만의 일이 아니다. 역대 대선에서는 투표일 한 달여 전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선두로 나온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후보 단일화’가 변수로 등장한 대선에선 지지율이 요동쳐 예측이 어려운 때도 있었다.

2012년 18대 대선 여론조사에서 핵심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현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그해 11월 23일 사퇴한 안철수 후보(현 국민의당 후보) 지지율을 얼마나 흡수하느냐로 모아졌다. 문 후보가 안 후보와의 단일화를 바탕으로 ‘골든크로스’(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지지율을 넘어서는 것)를 통해 대역전극을 연출하는 것 아니냐는 기대 때문이었다. 실제로 한국갤럽이 당시 진행한 긴급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는 안 후보가 사퇴한 지 5일 만에 지지율(42%)이 18%포인트 급상승하며 박 후보(45%)를 바짝 추격했다. 오차범위(±2.5%포인트, 95% 신뢰 수준) 내 접전이었다.

이런 기대감은 대선 직전까지 이뤄진 여론조사에 많이 묻어났다. 선거일 직전 일주일까지 후보 간 지지율 격차가 평균 1%포인트에 불과해 오차범위 내 접전이 이어졌다. 또 한국갤럽이 18대 대선 종료 후 공개한 선거일 직전 일주일에는 문 후보 지지율이 45%까지 상승하며 박 후보(46∼47%) 턱밑에 이르렀다. 대선 당일 오후 4시까지 전화조사에서는 단순 지지도상으로 문 후보(45%)가 박 후보(44%)를 1%포인트 차로 앞서는 일도 있었다.

한국갤럽은 최종적으로 보수층 결집 효과와 함께 18대 대선을 박 후보 50.2%, 문 후보 49.4%로 최종 예상했다. 이는 실제 대선 득표율(박 후보 51.6%, 문 후보 48.0%)과 결론이 같았다. 투표가 끝난 직후 모 방송사는 문 후보가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다는 다른 여론조사 기관의 출구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2002년 16대 대선 여론조사의 변수도 단일화였다. 대선일 26일 전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은 32.3%로, 노무현 정몽준 후보(각각 25.4%, 25.1%)를 오차범위(±2.2∼3.1%포인트, 95% 신뢰 수준) 이상으로 앞섰다. 그러나 정 후보가 노 후보와 단일화를 이룬 직후 여론조사(11월 25일)에서 노 후보는 지지율 43.5%로 이 후보(37.0%)를 제쳤다. 노 후보는 여론조사 결과와 같이 본선에서도 48.9%의 지지율(이회창 46.6%)로 승리했다.

문병기 weappon@donga.com·송찬욱 기자·장관석 기자 j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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