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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용의 다른 경제]文노믹스·安노믹스가 필요한가

입력 | 2017-04-07 03:00:00


홍수용 논설위원

2012년 12월 일본 도쿄에서 한중일 경제관료 세미나가 열렸다. 토론 주제는 한국의 근혜노믹스, 일본의 아베노믹스, 중국 리커창 총리의 리커노믹스였다. 사회를 본 이창용 당시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5년 뒤 세 나라의 순위가 궁금하다”고 했다. 꼴찌 성적표를 확인하는 것이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 그때 우리 관료들은 몰랐다.

근혜노믹스 폐기는 바보짓

경제정책 설계는 기와집을 한 채 그리는 것이다. 먼저 사다리꼴 지붕을 큼직하게 스케치한 뒤 큰 목표를 써넣는다. 박근혜 정부에선 ‘국민행복시대’, 이명박 정부 때는 ‘선진 일류국가 건설’이었다. 지붕 바로 아래 기둥 3개에는 중간 목표를 새긴다. 기초가 튼튼한 경제, 혁신경제, 내수수출 균형경제 같은 것들이다. 각 기둥에 연결된 방에 세부 과제를 채우면 그게 바로 무슨무슨 노믹스다.

근혜노믹스의 공식 명칭인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2014년 2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발표하려고 했다. 부총리의 성을 딴 ‘초이노믹스’가 싫었는지 박 전 대통령은 직접 담화문을 내겠다고 했다. 그때 모든 게 어그러졌다. 기재부가 원래 준비한 100개짜리 세부 과제는 20분짜리 세련된 담화문에 맞춰 60개로 쪼그라들었다. 공공기관 인사 혁신방안, 보조금 부정수급 축소, 중소기업 취업 알선 강화 대책이 빠졌다. 개혁의 타깃이 된 세력이 살아남은 것이다. 공공개혁이 폭삭 망하고 양극화가 심해진 건 대통령의 스포트라이트 욕심 때문인 셈이다.

내 집 가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기둥뿌리를 뽑는 사람은 없다. 근혜노믹스를 완전 폐기하는 것은 꼭 그런 바보짓이다. ‘기초 튼튼 경제’라는 기둥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회에 퍼진 기득권 구조(지대추구 행위)를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 문서에서 처음 인정한 게 이 기둥이다. 성장의 사다리가 잘 작동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 혁신경제는 대기업의 불공정한 독식 구조를 고쳐야 한다는 말이다. 보수정부가 기득권 개혁에 이렇게 총대를 멘 적이 없다. 대통령과 비선은 기둥의 뜻도 모르고 원고만 읽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통령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경제공약은 3개년 계획과 뿌리가 같다. 문 후보의 재벌개혁마저도 대기업을 망하게 하자는 게 아니라면 원칙이 바로 선 시장경제라는 개혁적 보수의 프레임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 안 캠프의 핵심 정책설계자는 공정한 제도를 만든 다음 성장을 추진한다는 점이 다르다고 했지만 3개년 계획에 1, 2, 3번 기둥을 차례로 세워둔 게 바로 그런 의미다. 대선 캠프에 들어간 수백 명의 학자 중에 과거 근혜노믹스의 문제점을 깊이 지적한 사람은 없었다. 문노믹스, 안노믹스가 뚝딱 만들어진다면 폴리페서의 기회주의적 속성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다.

대선후보들이 지난 정권의 실패에서 배울 점은 ‘남의 나라 경제를 예단하지 말라’이다. 박 정부 내내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지도에 없는 길을 가야 한다는 말이 유행했다. 이 말 때문에 마치 우리가 일본보다 낫다는 착각에 빠졌다.

日은 20년을 잃은 적 없다

그 20년 동안 일본에선 성장 관련 지표만 떨어졌다. 반면 아베노믹스를 통해 연구개발 투자 2위, 과학인프라 경쟁력 2위, 지식정보시장 규모 2위 등으로 실력을 키웠다. 그걸 못 봤으니 한국은 부동산 부양과 추경으로 경제에 거품만 일으켰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집을 다 허무는 재건축이 아니라 뼈대를 둔 채 내실을 다지는 리모델링이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