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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북카페]美 사회 곳곳에 만연한 흑인차별 날카롭게 풍자

입력 | 2017-04-07 03:00:00

폴 비티作 ‘셀아웃’




‘맨부커상을 수상하면 반드시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통설을 증명하듯 지난해 수상작인 폴 비티의 ‘셀아웃(The Sellout)’ 열풍이 영국 서점가를 달구고 있다. 비티는 이 상의 48년 역사상 첫 미국인 수상자다. 셀아웃은 처음 영국 출판계에 소개됐을 때 논란이 많을 소재라는 이유로 무려 13개 출판사에서 계약을 거절당했다. 런던의 작은 출판사 원월드에서 겨우 출간됐는데, 이 출판사는 2015년 ‘일곱 건의 살인에 대한 간략한 역사’에 이어 2년 연속 맨부커상 수상작을 낸 경사를 맞았다.

이 책은 미국 사회 곳곳에 만연한 흑인에 대한 차별을 강렬하고 날카로운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냈다. 애칭인 ‘봉봉’으로 불리는 주인공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근교 소도시 디킨스에서 나고 자란 흑인이다. 디킨스는 인구 대부분이 흑인인, 각종 범죄가 판치는, 화려한 할리우드나 따사롭고 평화로운 캘리포니아와는 대조적인 이미지의 도시로 묘사된다.

봉봉은 이곳에서 자칭 흑인 연구 전문 사회학자이자 상담가인 아버지로부터 ‘심리 테스트’라는 명목의 갖은 학대를 받으며 자랐다. 여러 농작물을 재배하는 노동으로 채워가던 봉봉의 일상은 어느 날 아버지가 경찰관의 판단 착오로 인해 살해당하고, 삶의 터전이었던 디킨스가 도시의 지위를 잃고 지도에서 사라지는 봉변을 겪으며 위기를 맞는다.

사라진 고향과 땅에 떨어진 흑인의 자존심을 바로 세우기 위해 봉봉이 생각해낸 방법은 흑인분리 운동이었다. 그는 땅 위에 흰색 페인트로 선을 그어 흑인만 살 수 있는 지역을 정한 뒤 “흑인과 백인 아이들이 서로 다른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그에게 아역 배우 출신 흑인 호미니 젱킨스가 찾아와 “흑인이 차별받고 살던 옛날이 그립다”며 “나를 당신의 노예로 삼아 달라”고 부탁한다. 이 사실이 미국 전역에 알려지자 봉봉은 ‘백인 차별주의자’이자 ‘노예 제도를 부활시킨 파렴치한’으로 온 국민의 비난을 받게 되고, 결국 헌법을 위반한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된다.

충격적인 설정과 폭력적인 언어 사용으로 읽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 작품은 많은 평론가와 독자로부터 ‘불편한 사실을 유려하고 재치 있는 문장으로 가볍게 풀어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최초의 흑인 미국 대통령이 나왔던 만큼 전에 비해 미국 사회의 흑인 차별이 많이 개선됐으리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작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근한 차별을 받느니 차라리 노골적인 노예 생활을 하던 옛날이 낫다”고 주장하며 스스로 노예가 되는 걸 택한 젱킨스를 통해 흑인 차별 문제가 해결될 길은 아직 멀었음을 꼬집는다.

국민의 약 87%가 백인으로 구성된 영국 사회에서 ‘셀아웃’이 인기를 끄는 건 맨부커상 수상작이라는 까닭도 있겠지만 영국인 역시 인종차별 이슈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런던=안주현 통신원 jahn8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