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최고의 조건이자 최대 걸림돌이 ‘경제력’이다. 국책연구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가 그제 공개한 ‘한국인의 부모됨 인식과 자녀양육관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한테 가장 필요한 ‘덕목’으로 5명 중 1명이 경제력을 꼽았다. 자녀와의 소통이나 인내심, 바른 인성, 자녀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뒤로 밀려났다. 좋은 부모가 되는 가장 큰 걸림돌로 3명 중 1명이 꼽은 것도 본인의 경제력이었다. 지난해 20∼50대 남녀 1013명(미혼자 259명, 무자녀 기혼자 57명 포함)을 조사한 결과다.
▷돈 없으면 좋은 부모도 될 수 없다는 한국인의 의식에 왠지 짠해진다. ‘흙수저 부모’는 ‘흙수저 자식’으로 대물림된다는 포기와 체념이 엿보인다. 아니면 “돈도 실력이야.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며 우리 사회를 뒤집어 놓은 정유라의 영향일까. 사교육 만능사회에서 부모 경제력에 따라 자식 앞길이 달라지는 현실을 마냥 부인할 순 없다. 그렇다고 재력 가진 부모가 좋은 부모의 보증수표도 아니다. 모 재벌그룹의 95세 아버지와 두 아들이 같은 날 법정에 출석한 장면이 남긴 씁쓸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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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