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묘지는 민족국가가 수립되면서 조성된 근대의 산물이지만 현충원에는 유교적 질서도 짙게 남아 있다. 묘지 크기가 사병은 3.3m²인데 장군은 8배 큰 26.4m²다. 대통령 묘역은 장군의 10배인 264m²로 왕릉이 부럽지 않다. 관존민비(官尊民卑) 가치관 때문일 것이다. 4년 전 채명신 장군이 유언에 따라 사병 묘역에 안장돼 화제가 됐다.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에는 장군 장교 사병 모두 4.49m²에 묻혀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어제 현충원을 찾아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 묘역과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 순으로 참배했다. 2012년 후보 때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만 참배한 그는 “군부독재 권위주의 정치세력이 진정한 반성을 하면 내가 제일 먼저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번엔 통합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려는 것 같다. 정치인이 큰일을 앞두고 대통령 묘를 참배하는 것도 유교의 흔적이다. 미국에선 존 F 케네디 대통령 부부가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된 정도 말고는 대통령 묘가 대부분 고향에 있어 일괄 참배가 불가능하다.
이진 논설위원 lee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