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작명의 오묘한 세계 1960∼70년대 ‘○○사’ 등 한자 유행 2000년대부터 글항아리-마음산책 등 우리말로 만든 감성적 이름 크게 늘어 숲-나무 관련 이름 가진 회사만 25개…‘물’ ‘불’ 관련 단어는 대부분 꺼려
출판사 이름에는 설립자가 책을 통해 사회에 전하고 싶어 하는 가치가 축약돼 있다. 우리말 이름이 늘면서 해외 도서이벤트 때 명패 달기가 고민스러워진 것도 최근의 특징이다. 동아일보DB
지난해 트위터에 올라온 이 글에 최근 짤막한 인사말 댓글이 하나 달렸다. 출판업 관계자들의 관심을 끈 건 댓글 단 이의 아이디였다.
‘도서출판 나무야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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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조적 유머를 담은 듯한 이 출판사의 사명은 요즘 출판업계의 작명(作名) 양상을 보여주는 사례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는 “출판사 작명도 영화 제목처럼 시대에 따라 유행을 탄다”고 했다. 1960, 70년대의 1세대가 ‘○○사’ ‘○○당’ 등 한자어를 쓴 뒤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 등 인문학적 감성의 작명이 대세를 이뤘고, 2000년대부터는 우리말 또는 영어 단어를 활용한 신조어가 늘었다는 것.
강 대표는 “10년 전 회사 이름을 지을 때 아내인 이은혜 편집장과 함께 달항아리 작품 전시를 찾아다니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항아리’란 단어를 끌어안고 앉았다가 자연스레 만들어낸 이름”이라고 말했다.
경기 파주시 문발로의 파주출판도시. 동아일보DB
작명 양상이 어느 정도 유행을 타다 보니 회사 이름을 혼동하는 경우도 적잖다. 단행본 출판사 모임인 한국출판인회의 회원사 중 종이의 재료인 나무, 나무가 자라는 숲과 산을 이름에 넣은 회사 수는 25개에 이른다. ‘숲’과 ‘더숲’, ‘나무생각’과 ‘생각의나무’, ‘사월의책’과 ‘오월의봄’ 등이 특히 헷갈리는 이름으로 꼽힌다. 한 출판사 편집자는 “미신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종이를 태우는 ‘불’, 젖게 하는 ‘물’과 연관된 단어는 은근히 피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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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대표는 “장난임을 설명하느라 꽤 애먹었다. 책은 다행히 예정대로 출간됐다. 출판사 이름에 책을 대하는 자신의 가치관을 투영하는 필자와 독자가 적잖음을 그때 깨달았다”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