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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이름 변경” 만우절 농담에… “책 계약 파기하겠다”

입력 | 2017-04-05 03:00:00

출판사 작명의 오묘한 세계
1960∼70년대 ‘○○사’ 등 한자 유행
2000년대부터 글항아리-마음산책 등 우리말로 만든 감성적 이름 크게 늘어
숲-나무 관련 이름 가진 회사만 25개…‘물’ ‘불’ 관련 단어는 대부분 꺼려




출판사 이름에는 설립자가 책을 통해 사회에 전하고 싶어 하는 가치가 축약돼 있다. 우리말 이름이 늘면서 해외 도서이벤트 때 명패 달기가 고민스러워진 것도 최근의 특징이다. 동아일보DB

“아마추어 전문 출판사를 하나 열고 싶다. ‘대체 이런 것도 책이라고 냈나?’ 싶은 것만 찍는…. 출판사 이름은 ‘나무야미안해’로 정했다.”

지난해 트위터에 올라온 이 글에 최근 짤막한 인사말 댓글이 하나 달렸다. 출판업 관계자들의 관심을 끈 건 댓글 단 이의 아이디였다.

‘도서출판 나무야미안해.’

이 회사 김미체 대표는 “포털에서 무심히 내 회사 이름을 검색해 보다가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 사람이 보여 반가운 마음에 댓글을 달았다. 대중적으로 인기가 없을 듯한, 상업적 가치가 낮아서 종이의 재료인 나무에 미안해야 할 듯 보이지만 누군가 소수의 독자는 꼭 찾아 읽을 내용이 담긴 책을 내려 한다”고 말했다.

자조적 유머를 담은 듯한 이 출판사의 사명은 요즘 출판업계의 작명(作名) 양상을 보여주는 사례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는 “출판사 작명도 영화 제목처럼 시대에 따라 유행을 탄다”고 했다. 1960, 70년대의 1세대가 ‘○○사’ ‘○○당’ 등 한자어를 쓴 뒤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 등 인문학적 감성의 작명이 대세를 이뤘고, 2000년대부터는 우리말 또는 영어 단어를 활용한 신조어가 늘었다는 것.

강 대표는 “10년 전 회사 이름을 지을 때 아내인 이은혜 편집장과 함께 달항아리 작품 전시를 찾아다니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항아리’란 단어를 끌어안고 앉았다가 자연스레 만들어낸 이름”이라고 말했다.

경기 파주시 문발로의 파주출판도시. 동아일보DB

산을 워낙 좋아해 해발 3000m의 일본 미나미알프스 정상에 오르기도 한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마음으로 이룬 산’이라는 뜻으로 엮은 조어 ‘마음산’에 ‘책’을 붙여 회사 작명을 했다. 정 대표는 “‘산책’이라는 단어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데 독자들이 ‘독서는 마음으로 하는 산책과 같다’는 의미를 붙여줘 기쁘고 고마웠다”고 했다.

작명 양상이 어느 정도 유행을 타다 보니 회사 이름을 혼동하는 경우도 적잖다. 단행본 출판사 모임인 한국출판인회의 회원사 중 종이의 재료인 나무, 나무가 자라는 숲과 산을 이름에 넣은 회사 수는 25개에 이른다. ‘숲’과 ‘더숲’, ‘나무생각’과 ‘생각의나무’, ‘사월의책’과 ‘오월의봄’ 등이 특히 헷갈리는 이름으로 꼽힌다. 한 출판사 편집자는 “미신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종이를 태우는 ‘불’, 젖게 하는 ‘물’과 연관된 단어는 은근히 피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출판사 작명을 단순한 개인 사업자의 가치관 표출 행위라고만 볼 수는 없다. 정은숙 대표는 2년 전 페이스북에 무심코 만우절 농담을 올렸다가 난감한 일을 겪었다, “그동안 마음산책을 아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부터 제 취미를 더 뚜렷이 반영해 회사명을 ‘마음등산’으로 바꿉니다”라는 글과 함께 포토샵으로 수정한 로고 이미지를 올렸는데 그걸 본 한 저자가 “그런 출판사 이름으로는 책을 내고 싶지 않다”고 계약 해지 의사를 밝혀온 것.

정 대표는 “장난임을 설명하느라 꽤 애먹었다. 책은 다행히 예정대로 출간됐다. 출판사 이름에 책을 대하는 자신의 가치관을 투영하는 필자와 독자가 적잖음을 그때 깨달았다”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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