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前부총리 대담집 출간 간담회
“탄핵 정국의 혼란은 한국 사회가 변화를 시도할 좋은 계기로 활용할 수 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2차례 경제 수장을 지낸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73)는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최근 출간한 대담집 ‘국가가 할 일은 무엇인가’와 관련해 기자간담회를 갖고 한국 사회의 현 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이 전 부총리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 국제 신용평가사 등을 안심시키기 위해 직접 연락을 취하며 동분서주한 경험이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이헌재 같은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나오기도 했다. 2005년 청와대 내 386세대 참모진과 갈등을 빚으며 부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공직에서 은퇴했지만 회고록 집필과 강연 등을 통해 한국 경제에 대한 고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 전 부총리는 “한국의 현 정치·경제 체제가 산업화를 추진하던 시절의 옛 시스템에 머물러 있다”고 꼬집었다. 경제 발전을 시작한 1960년대에 처음 시작된 국가 주도의 정책들이 50년 넘게 지난 지금까지 큰 틀에서 별로 바뀌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그는 “그동안은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이 박정희 시대의 대통령이 된 줄 알고 행동해 왔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하나도 예외 없이 전부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면서 대통령을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경제 분야에서도 특정 산업을 육성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더 이상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며 “이제는 국가의 역할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그려야 할 미래 사회의 비전으로 이 전 부총리는 “리바운드 사회”라는 신조어를 제시했다. 골대를 맞고 튀어나온 공을 다시 잡아내는 농구의 리바운드처럼, 사람들이 실패를 걱정하지 않고 꿈을 좇을 수 있도록 안전망을 갖추는 게 국가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한 대안책으로 이 전 부총리는 “개인의 실패 비용을 국가가 나눠 부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근로장려금(EITC) 등을 통해 누구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소득을 국가가 뒷받침해 주는 대안을 고려해 보자”고도 했다. 차기 대선에서 한국에 필요한 리더십에 대해선 “앞으로 3, 4년은 지금처럼 5개 이상의 힘 있는 정당과 10여 개의 정파가 난립하는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며 “불가피한 개혁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갈 담대한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 전 부총리는 지난해 8월 교수, 언론인 등 각계 인사들과 함께 싱크탱크인 ‘여시재(與時齋)’를 꾸려 정책 제언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