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해진 남성과 여성성, 젠더리스
남성복과 여성복을 함께 선보인 버버리의 2017 2월 컬렉션. 버버리 제공
과거 젠더리스 패션은 주로 여자들이 남자처럼 입는 것을 ‘유니섹스(남녀가 함께 입는 것)’ 통칭하며 크게 유행했다. 하지만 이런 톰보이 스타일은 남성적인 것이 여성적인 것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페미니스트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요즘의 젠더리스 패션은 좀 다르다. ‘여기 핑크, 플라워, 매니시, 걸리시, 오버사이즈 등 다양한 트렌드가 있는데, 남자나 여자나 골라서 입으시오’ 하는 식이다. 오히려 ‘남성 해방’에 가깝겠다. 사실 여성복의 남성적 요소의 역사야 슈트팬츠를 포함해 길기 때문이다. 소년 시절부터 지겹도록 파랑색, 회색, 검은색만 입었으면 이제 핑크색, 보라색, 붉은색으로 범위를 넓혀도 된다. 러플 장식, 하이힐, 스커트까지 입는 패션 피플도 적지 않다. 따지고 보면 근대화 전 유럽의 남성 귀족들이 사랑하던 아이템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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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버리 제공
여자친구 옷장에서 꺼내 입은 듯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구찌의 2017 봄여름 컬렉션 아시아프레스데이가 열렸다. 막 쇼를 끝낸 따끈따근한 의상이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서울로 공수된 것이다. 남녀 컬렉션이 함께 있었는데, 누가 얘기해주지 않으면 어느 쪽이 여성복인지 알기 어려울 정도였다. 오히려 남성 컬렉션에서 탐나는 셔츠와 코트가 많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구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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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컬렉션부터 남성복과 여성복을 합친 버버리는 좀 더 한국 남성들의 정서에 가까운 젠더리스 룩이다. 올해 처음 선보인 버버리의 ‘트로피컬 개버딘’ 트렌치코트 중 하나는 아예 ‘젠더리스’라는 이름으로 시판됐고 주요 글로벌 온라인쇼핑몰에서는 이미 완판되기도 했다. 남성 코트지만 소매 깃에 휘날리는 러플 장식은 여성들이 더 탐낼 만한 아이템이다.
어깨에 힘 준 여성복
권력 지향적이고 강한 이미지를 ‘남성적’이라고 표현한다면 이번 시즌 여성복이 그렇다. 남성복이 ‘여성 젠더’에 가까워졌다면 여성복은 남성성에 가까워졌다. 올 초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즈음에 전 세계 여성들이 ‘우먼스 데이’ 시위를 열었고, 패션계에서 여성파워를 일으키자는 움직임도 거세다. 8일(현지 시간) 세계 여성의 날에 미국 금융의 중심지 월가의 황소 상 앞에 깜짝 이벤트로 ‘두려움 없는 소녀상(fearless girl)’이 등장한 것도 최근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드리스 반 노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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