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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아버지”… 비닐하우스 효자의 통곡

입력 | 2017-03-03 03:00:00

뇌졸중 앓은 부친 화재로 질식사… 치매노모는 숨진것 모른채 잠들어
가까이 모시려 임시거처 짓던 아들, 다음날 주검 발견하고 망연자실




지난달 27일 오후 6시 22분 광주 북구의 한 주택에서 작은 불이 났다. 집주인 A 씨(75·여)가 귀가했을 때 불은 자연 진화됐다. 거실에는 A 씨의 남편(82)이 누워 있었다. A 씨는 남편의 이부자리를 확인한 뒤 안방에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오전 잠에서 깬 A 씨는 아들 B 씨(51·회사원)를 찾아갔다. 아들은 집에서 50m 떨어진 곳에 주거용 비닐하우스를 만들고 있었다. B 씨는 머리카락이 타고 얼굴에 그을음이 묻은 어머니 모습에 놀랐다. “무슨 일이냐?”는 아들의 물음에 어머니는 “불이 났었다”고 했다. B 씨가 황급히 부모님 집에 가보니 10m² 크기의 부엌이 타고 아버지는 숨져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A 씨의 남편은 2009년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져 거동이 불편했다. A 씨는 남편을 간병한 지 1년 만에 치매를 앓기 시작했다. 3남 3녀 중 둘째인 B 씨는 가족들과 함께 부모를 요양병원으로 보내는 방안을 고민했다.

B 씨는 부모의 입원 대신 요양보호사를 통한 가사치료를 결정했다. 그리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부모의 집을 방문해 식사와 잠자리를 챙겼다. 하지만 어머니의 치매 증세는 갈수록 악화됐다. 10분 거리의 아파트에서 오가던 B 씨는 아예 부모 곁에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부모 집 근처에 주거용 비닐하우스를 짓기 시작했다. 겨울이 지나고 비닐하우스 공사가 막바지에 접어든 가운데 갑작스러운 화마가 아버지를 앗아간 것이다.

2일 광주 북부경찰서에 따르면 A 씨가 가스레인지에 국을 데우다 잊어버려 불이 난 것으로 보인다. A 씨 남편의 사인은 질식사였다. 이날 빈소에서 만난 B 씨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생이별을 막고 싶다는 마음에 가사치료를 선택했다”며 “효도 한 번 해본 적이 없는데 아버지가 이렇게 돌아가셔서 가슴이 아프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자녀가 치매에 걸린 부모를 집에서 모시려면 사회생활을 포기해야 할 처지”라며 “가사치료가 가능한 요양보호사 지원 정책이 더 활성화되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B 씨는 장례식 후 부모 집을 수리한 뒤 홀로 남은 어머니를 모시기로 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