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하얏트서울 첫 한국인 페이스트리 셰프 하형수씨
그랜드하얏트서울 호텔 개관 39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인으로 셰프에 임명된 하형수 페이스트리 셰프. 자신이 만든 케이크와 파이를 소개하며 “맛과 멋 외에도 즐길거리가 있는 디저트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셰프직 제안을 받고 소화불량에 걸릴 정도로 부담이 됐었습니다.”
최근 초콜릿 향과 과일 향이 어우러진 호텔 페이스트리 코너에서 만난 하 셰프는 “처음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새로운 길을 잘 열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도 느낀다”며 이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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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셰프는 이런 ‘유리벽’을 어떻게 깼을까. 스스로는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것에 도전해 온 것이 좋은 결과를 보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요리사 길을 걷기 시작한 것부터 도전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성악을 전공했어요. 하지만 노래를 부르고 무대에서 내려올 때마다 알 수 없는 허무함을 느꼈죠.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창의적인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여러 길을 찾다 대학 전공을 식품공학과로 하면서 요리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제과 분야를 택한 이유도 밀가루와 물, 달걀과 우유 등 가루와 액체로 창의적인 작품을 만드는 제과제빵 분야에 매력을 느껴서라고 하 셰프는 설명했다. 하지만 처음 요리에 발을 디딘 1990년대에는 ‘한국 사람은 제 맛을 낼 수 없다’는 편견이 지금보다 강했다. 조리복을 입은 지 10년째 되던 2002년 하 셰프는 유학을 결심했다. 결혼 이틀 만에 신혼여행도 생략한 채 아내와 함께 프랑스 리옹으로 떠났다.
“프랑스에서 10대 중반인 현지인들과 함께 급여도 거의 없는 스타주(수련 요리사)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프랑스어도 전혀 몰랐어요. 언어 장벽, 문화 장벽에 세대차까지 느끼며 힘들게 공부했습니다. 아내가 유일한 위로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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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과 분야 요리사에게 새로운 시도란 뭘까. 질문을 던지자 하 셰프는 “잠시만 기다리라”며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10여 분 만에 접시에 디저트 요리를 하나 담아 나왔다. 처음에는 어른 주먹 크기만 한, 하얀 생크림이 덮인 뭔가로 보였다. 하지만 숟가락으로 요리를 탁 치자 ‘바삭’ 하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겉껍질이 깨지고 안에 숨어 있던 화사한 색깔의 디저트가 드러났다.
“화이트데이 때부터 새로 내놓을 디저트입니다. 예쁜 모양과 맛은 이제는 당연한 거잖아요. 먹을 때 손님들도 직접 참여하면서 맛, 멋 외에 다른 요소까지 즐길 수 있는 디저트를 만들어야죠.”
39년 만의 한국인 셰프에게 사람들은 ‘한국적인 디저트’도 기대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는 ‘감’에 주목하고 있다. “감이라는 과일을 의외로 해외에서 잘 모르더라”며 “감의 단맛을 이용한 디저트 등 우리나라 과일을 사용한 디저트를 시작으로 세계에서 통할 ‘우리 맛’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약 2시간 동안 주방의 요리사들과 매장의 직원들은 정신없이 움직였다. 하 셰프는 이런 자신의 ‘부하’들에게 시종일관 존댓말을 쓰며 온화한 얼굴로 대했다. 드라마 속 ‘까칠하고 고집 센 셰프’와는 다른 인상이었다. 그런 드라마 속 셰프와 다른 것 같다고 마지막으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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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