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필리핀 위안부 피해자 다큐영화 ‘어폴로지’ 개봉 앞둔 티파니 슝 감독
티파니 슝 감독(왼쪽)이 촬영 중 중국의 차오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슝 감독은 “어떤 할머니에게도 과거를 말해달라고 설득하지 않았다. 단지 옆에 머물며 할머니들이 이야기할 준비가 되기를 기다렸다”고 했다. 사진 출처 티파니 슝 감독 트위터
사는 곳도, 언어도 다른 세 할머니지만 같은 아픔을 공유한 채 수십 년을 살았다. 한국의 길원옥, 필리핀의 고(故) 아델라, 중국의 차오 할머니 얘기다. 이들은 다음 달 16일 국내 개봉을 앞둔 다큐멘터리 영화 ‘어폴로지(The Apology)’에서 말한다. “내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고.
무려 6년간 400시간의 촬영을 거쳐 영화를 선보인 티파니 슝 감독(32)은 23일 동아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일본 정부가 인류에게 저지른 잔혹 범죄를 인정조차 하지 않는 것은 믿기 힘들 정도로 비극적인 일”이라며 “위안부 문제는 단지 과거에 발생한 지난 역사가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영화엔 일본에 찾아가 사과를 촉구하는 할머니들에게 “창피도 모르는 한국 매춘부” “당장 일본에서 떠나라”고 거세게 소리 지르는 일본 우익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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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한국의 길원옥 할머니(89)는 이들 중 가장 적극적으로 피해 상황을 알린다. 아픈 몸을 이끌고 수요 집회에 참석하거나 일본 정부의 사과를 촉구하는 1500만 명의 서명을 전하기 위해 스위스 제네바의 유엔 인권위원회를 찾아간다.
“길 할머니는 ‘호랑이’처럼 용맹한 분이에요. 150cm밖에 안 되는 체구로 힘겹게 투쟁하는 모습을 보며 늘 감탄했고, 존경스러웠죠. 한번은 자신이 겪었던 고된 시간을 털어놓으신 후 제 주머니에 돈을 넣어주시더군요. 밥이라도 챙겨 먹으라면서요. 잘못된 역사 때문에 그들은 위안부라고 불리지만, 우리에겐 ‘따뜻한 할머니’였습니다.”
감독은 촬영에 6년이 걸린 이유를 묻자 “처음엔 길어야 2년 정도 생각했는데 할머니들과 가족, 주변 인물을 알아가는 데만 2년이 걸렸다”고 했다. 실제 중국 차오 할머니는 이번 촬영을 하며 점차 마음을 열었고 딸에게 처음으로 과거를 털어놨다.
할머니들은 촬영하는 동안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졌다. 필리핀의 아델라 할머니는 갑자기 건강이 악화돼 촬영 도중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슝 감독이 한국 할머니들의 수요 집회 동영상을 보여주자 “꼭 한국에 가서 함께할 것”이라는 말을 남긴 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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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