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K스포츠·미르재단도 그 시작은 ‘선한 의지’였을 것이라는 취지의 안희정 충남지사 발언에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연이틀 날을 세웠다. 문 전 대표는 어제도 “적폐 청산을 위한 대개혁은 적폐에 대한 뜨거운 분노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문 전 대표가 안 지사 발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그의 대선 주자 지지율이 자신의 ‘대세론’을 위협하는 데 대한 초조감의 발로로 보인다.
안 지사는 19일 한 강연에서 “(박 대통령도) 선한 의지로 좋은 정치를 하려 했는데 뜻대로 안 된 것”이라며 “K스포츠·미르재단도 동계올림픽을 잘 치르고 싶었던 마음에서 했겠지만 법과 제도를 따르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에 문 전 대표가 “그 발언에 분노가 빠졌다. 정의의 출발은 분노”라고 비판하자, 안 지사는 “지도자의 분노라는 것은 그 단어 하나만 써도 피바람이 난다”고 반박했다. 지극히 상식적인 안 지사의 발언이 논란이 되는 것 자체가 의아할 따름이다. 아직도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제1당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두 사람은 어제도 “분노 없이 어떻게 정의를 세우느냐”(문 전 대표) “정의의 마무리는 사랑”(안 지사)이라고 공방을 벌였다. 그래도 ‘웬 박근혜 옹호냐’는 논란이 가시지 않자 안 지사는 결국 국정 농단에 이른 박 대통령의 예를 든 점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한발 물러섰다. 두 사람이 각각 ‘대청산’과 ‘대통합’을 내세운 경쟁자 사이라지만, 같은 대통령을 모셨던 같은 당 소속의 여론조사 지지도 1, 2위 대선 주자의 생각이 이렇게 다르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어제 문 전 대표의 방문을 받은 태고종 총무원장 도산 스님도 ‘보복’을 거론하며 향후 한국 정치를 걱정했다. 이에 문 전 대표는 “보복은 없을 것”이라며 협치와 통합의 정치를 강조했다. 하지만 ‘친일부패 기득권 세력의 대청소’를 외치는 그의 언동을 보는 국민은 그가 집권하면 노무현 정권의 ‘편 가르기’와 ‘보복 정치’가 재연될까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