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영화 ‘퍼스트 스텝’ 개봉 앞둔 탈북감독 1호 김규민씨
최근 서울 마포구의 작업실에서 만난 김규민 감독. 그는 “통일 준비는 서로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내 영화가 북한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규민 감독 제공
탈북자 출신 ‘1호 영화감독’인 김규민 씨(43)의 말이다. 그는 최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 피살 소식이 전해진 뒤 가족과 지인들로부터 ‘괜찮냐’ ‘조심하라’는 안부 연락을 적잖게 받았다고 했다.
김 감독은 줄곧 북한의 참혹한 현실을 소재로 한 영화를 제작해왔다. 요즘은 2015년 미국에서 열린 ‘제12회 북한 자유주간 행사’에 참가한 탈북자 24명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퍼스트 스텝(First Step)’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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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지난해 8월 홍콩에서 열린 북한인권영화제에서 처음 선보였고, 이달 한국에서 시사회를 열었다. 6월 미국 워싱턴에서의 상영도 준비 중이다. 차기작으로는 북한 상이군인 가족의 비참한 현실을 다룬 ‘사랑의 선물’이란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김 감독은 “북한을 다룬 영화를 선보일 땐 늘 만감이 교차한다”며 “특히 이번 영화는 탈북자들이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1만, 3만 원씩 십시일반 제작비를 보태줘 의미도 크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까지 나온 북한에 대한 영화는 잔혹한 실상을 고발하거나 탈북자의 어려움을 담은 것들이 대부분”이라며 “나는 같은 처지에서, 탈북자들의 진솔한 속 얘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제작 동기를 밝혔다.
앞서 김 감독은 아버지와 아들의 탈북을 소재로 한 ‘크로싱’(2008년)에서 조감독으로 경력을 쌓았고, 2011년엔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북한의 참혹한 현실을 다룬 영화 ‘겨울나비’를 선보였다.
두려워도 영화는 포기할 수가 없다는 게 그의 말이다. “이번 영화를 촬영할 때도 탈북자 활동가에게 협박 문자가 온 걸 봤습니다. ‘네 아내, 자식들까지 모조리 죽이겠다는….’ 그 장면을 찍는데 손이 덜덜 떨려 카메라가 흔들렸어요. 이런 상황에서 북한 인권 활동가들의 심정은 어떤지, 그럼에도 왜 계속 북한 인권의 실상을 고발하는지 알리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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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감독은 통일이 될 때까지 북한 현실을 다룬 영화를 ‘끈질기게’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북한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건 가시밭길입니다. 국내 관객보다 오히려 외국인들이 더 눈물 흘리고, 관심을 가져주는 게 현실이죠. 하지만 한 편, 한 편 공들여 만들다 보면 우리 관객들도 언젠가 알아주지 않을까요. 통일이 되면, 그땐 남북한을 배경으로 한 신나는 코미디 영화 한 편 만들고 싶습니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