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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만 생긴다면”… 선진국 진보정권, 보수정책도 적극수용

입력 | 2017-02-13 03:00:00

[청년에게 일자리를!]美-佛-獨-英, 진영논리 넘은 경제정책




세계 반도체 1위 회사인 인텔은 미국 애리조나에 70억 달러(약 8조500억 원)를 투자해 새 공장을 짓는다고 최근 발표했다. 여기서 생길 새 일자리만 3만 개다.

11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런 게 바로 우리가 원하는 ‘좋은 일자리’”라고 치켜세웠다. 그는 “정부가 각종 규제와 세금 부담을 덜어줄 것을 알기에 인텔이 이런 일자리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국내 4대 그룹 관계자는 “힘을 앞세운 ‘일자리 뜯어내기’란 비판에도 어쨌든 트럼프는 자신이 약속한 ‘일자리 창출’ 어젠다를 지켜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정치인들보다 낫다”고 말했다.

탄핵정국 이후 조기대선이 가시화하고 있지만 유력 대선 주자들은 일자리 확대를 위한 경제 성장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지지율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는 진보 후보들 사이에서는 재벌 해체와 규제 강화 등 ‘진영 논리’만 쏟아지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 번은 기업의 부를 빼앗아 나눠 가질 수 있겠지만 그 다음에는 무엇으로 나눠 가질지, 부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고 지적했다.

○ 선진국 진보진영의 교훈

일자리를 늘리려면 기업이 투자하고 새로운 사업을 벌일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게 기본 원리다. 지금 한국 정치권은 거꾸로 가고 있다. 규제는 강화하고 사회 안전망에 투입해야 할 국민 세금으로 공무원 일자리를 늘리자는 구호를 줄줄이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선진국 진보 진영의 성공적인 경제 어젠다를 한국 정치권이 복기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만 있다면 때론 보수진영의 경제논리까지도 수용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정책으로 성장을 주도했다는 점이다.

1993년 집권한 빌 클린턴 민주당 정부는 적극적인 시장 개입과 공공투자 확대로 재임 말년인 2000년 미국 역사상 최고 수준의 재정흑자를 달성했다. 행정비 지출은 강력히 억제하는 한편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를 크게 늘렸다. 첨단기술 개발 및 인력 자원에 대한 기업 투자에는 인센티브를 대거 도입했다. 집권 첫해인 1993년 2.7%이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00년 4.1%까지 올랐다. 같은 기간 실업률은 6.90%에서 3.99%로 절반 수준으로 낮춰졌다.

독일의 대표적 진보정당인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도 2003년부터 대대적인 노동시장 개혁을 추진했다. 주도했던 인물은 폴크스바겐 이사 출신인 페터 하르츠. 이른바 ‘하르츠 개혁’으로 불린 이 프로젝트의 키워드는 ‘고용 창출’이었다. 신규 창업 때는 최장 4년간 임시직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최장 32개월이던 실업급여 지급기간은 최소 12개월로 줄였다. ‘유럽의 병자’ 취급을 받아오던 독일의 실업률은 2005년 11.7%에서 2007년 9.0%로 줄었다.

2012년 11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정부가 도입한 ‘갈루아 보고서’ 역시 요점은 기업조세 부담 경감을 통한 투자 활성화 및 일자리 늘리기였다. 재무관료 출신으로 기업경쟁력 전문가로 꼽히던 루이 갈루아 전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 회장의 이름에서 따온 보고서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부(富)를 만들어 내는 것은 기업인인데도 기업인에 대한 적대감이 너무 컸다. 이래서는 프랑스가 일어설 수 없다는 게 보고서의 핵심”이라고 했다.

1997년 입각한 영국 신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정부는 전임 정부의 창조산업 정책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계승했다. 산업 및 도시 경쟁력을 강화해 일자리를 늘리려는 ‘성장 어젠다’라는 점을 높게 평가해서다. 1998년 7.5%이던 영국의 실업률은 2006년 5.3%로 줄었다.

○ 거꾸로 가는 한국 대선 주자들

전문가들은 지금 한국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 방안이 핵심에서 벗어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치인들이 현장에 바탕을 둔 경제정책이 아니라 프로파간다(선동)적인 슬로건에만 익숙해져 있다”며 “이대로라면 경제성장률이 2%대도 유지하지 못하고 1% 이하로 추락할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고 우려했다.

지금까지 거론된 핵심 키워드는 ‘규제 강화’에 가깝다. 유력 대선 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0대 재벌을 겨냥해 “강력한 규제를 도입해서 전체 대기업의 변화를 이끌어 내겠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집중투표제와 다중대표소송 등은 참여정부 시절부터 거론돼 온 경제민주화 규제들이 되살아난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소속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은 여기서 더 나아가 ‘재벌 해체’를 공언하고 있다.

대선 주자들이 미래 청사진으로 일제히 앞세우고 있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도 산업계는 고민 없이 좋은 단어만 나열하는 것 아니냐며 회의적이다. 4차 산업혁명은 단순 자동화를 넘어 정보통신기술(ICT) 융합을 통해 공장 및 제품이 지능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지만 산업 자체만 놓고 보면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OECD 21개 회원국을 봤을 때 평균적으로 전체 일자리의 9%가 자동화로 대체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재계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으로 줄어드는 일자리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시급한 시점인데, ‘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떠드는 정치인들은 도저히 못 믿겠다”고 말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전부터 업계에서 요구해온 서비스 산업 규제 완화 등 관련 법안은 수년째 국회에 묶여 있는데, 이에 대한 견해부터 밝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샘물 evey@donga.com·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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