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원 산업부 차장
포세권은 포켓몬고와 역세권을 합친 신조어. 게임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거점인 ‘포켓스톱’이 많아 이용자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다. 포켓스톱 근처에서 일하거나 사는 사람들은 손쉽게 아이템을 보충할 수 있어 ‘포수저(포켓몬고+금수저)’라 불린다.
‘포켓코노미(포켓몬고+이코노미)’라는 말도 있다. 오랜 시간 게임을 하려다 보니 보조배터리 판매가 는다. 포세권 커피숍 매출도 올랐다. 후배에게 “보기 드문 ‘피카츄’를 집 거실에서 발견했다”고 했더니 “동네 집값 오르겠다”는 답변까지 돌아왔다.
이처럼 이미 한바탕 휩쓸고 간 것으로 여겼던 포켓몬고가 ‘6개월 늦게’ 한국에서 다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마치 외국보다 6개월 늦게 개봉한 영화가 연일 매진되는 듯하다. 결국 아는 것과 겪는 것은 전혀 달랐던 셈이다. 일부에서는 “해외에서 시들해진 것처럼 한국에서도 곧 인기가 식을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는 ‘한 번도 뜨겁지 못했던 사람이 연탄재를 발로 차며 하는 변명’같이 들린다.
포켓몬고 신드롬의 이유는 무엇일까. 포켓몬스터라는 친근한 콘텐츠(지식재산권·IP), 사용자의 걷기와 체험을 강조하는 독특한 스토리, 수집과 육성으로 이어지는 재미의 조합…. 일리 있는 해석들이다. 하지만 히트작을 두고 성공 이유를 찾으려니 왠지 정답을 미리 보고 문제를 푸는 듯한 느낌이다.
다르게 물어보면 어떨까. 게임 강국이라는 한국에서는 왜 포켓몬고처럼 세계를 흔드는 게임이 못 나오는 걸까.
포켓몬고 기반인 포켓몬스터의 역사는 20년이 넘는다. 1996년 일본 닌텐도의 비디오 게임에서 출발해 애니메이션과 카드 게임, 캐릭터 상품, e스포츠로 발전했다. 일본 문화 콘텐츠 산업의 저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에 비해 한국의 대항마인 뽀로로나 터닝메카드는 역사가 짧은 데다 저변도 한정적이다. 게임을 ‘사회악’으로 취급하는 분위기까지 더하면 쉽게 넘기 어려운 간극이 있다.
한국적 기업 문화도 되짚어봐야 할 문제다. 한 대형 게임회사 개발자는 “제작 단계에서 토론을 통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면 ‘윗선’에서 ‘우리 땐 이런 게 성공했다’며 뒤집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시도가 나오기 어렵다”고 말했다.
때로 오답이 정답을 찾는 길을 안내하기도 한다. 특히 창의성이 밑천이라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지금까지의 통념을 뒤집어엎는 시도와 실패 경험이 필수적이다. ‘오답 노트’를 거리낌 없이 쓰는 사회를 앞당겨야 한다.
주성원 산업부 차장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