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임현석의 두근두근 IT] 군대서 탄생한 이스라엘 실리콘벨리

입력 | 2017-02-06 18:32:00


“저 비밀 정보부대서 근무했습니다.”
“저도요.”

스파이 전우회가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지난달 31일부터 이틀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열린 국제 사이버 보안 박람회 ‘사이버텍 2017’ 현장. 스타트업 창업자들 중 상당수가 첩보원 출신으로 정보부대에서 근무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심지어 이스라엘 대외정보국(모사드)은 박람회 부스까지 차려 눈길을 끌었다. 해외정보 수집과 비밀정치공작, 암살 의혹 등으로 외신을 장식하는 모사드가 삼성과 IBM 등 세계적인 IT기업과 나란히 부스를 운영하는 진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1일 이스라엘 텔아비브 무역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사이버 보안 박람회 ‘사이버텍2017’에서 대외정보국 모사드가 부스를 열고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왜 이스라엘인들은 자국의 IT기업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군대를 들먹일까? 언뜻 고개가 갸웃하지만, 이들의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됐다. 중동국가로 주변국과의 군사적 긴장 때문에 첩보와 군 보안을 강조하면서 이스라엘의 IT문화가 싹 텄기 때문이다. 특히 1990년대 들어 IT기술의 발달로 첩보와 보안의 무게추가 사이버전으로 옮겨갈 것을 예상해 해커 집단을 국가차원에서 양성한 것이 주효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국민개병제인 이스라엘서 해커들은 군 복무를 마친 뒤, ‘배운 도둑질’로 IT창업에 나섰는데 특히 군과 밀접한 사이버 보안 분야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한해 매출만 14억 달러에 달하는 사이버 보안기업 체크포인트다. 이 회사 제품인 ‘파이어월’은 온라인 방화벽의 대명사로 시장을 이끄는 기업으로 꼽힌다. 체크포인트 회장인 길 슈웨드(48) 역시 정보부대 출신이다. IT정보부대인 8200부대를 나온 길 슈웨드 회장은 부대에서 익힌 지식을 바탕으로 보안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밝힐 정도다.

8200부대 출신들이 창업한 사이버 보안 기업만 400여 개에 이를 정도다. 8200부대는 매년 수백 명 의무복무병 모집하는데 현재 장교 포함 약 5000명이 복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구가 1000만 명으로 상대적으로 적고 IT보안 전문가를 육성하기 어려운 핸디캡을 의무복무제를 통해 돌파한 것이 인상적이다. 창업과 취업에 유리하다는 것을 아는 이스라엘 청년들은 정보부대 입대를 희망한다. 이들은 징병연령인 18세가 되기 1년 전부터 신체조건과 학습능력, 적성에 대한 평가와 면접이라는 꼼꼼한 선발과정을 통과해야만 정보부대 대원이 될 수 있다.
이처럼 확실한 군대 인센티브, 청소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투명한 군 선발과정 등은 병역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로 이어진다.

1일 사이버텍2017 박람회장에서 사이버 보안업체 창업자인 라미 에프라티 씨가 기자에게 군 문화가 창업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설명하고 있다.



1일 박람회장에서 국가 사이버 민간보안 책임자 출신으로 현재 한 보안업체 창업자인 라미 에프라티 씨는 “이스라엘 국민들은 군대를 통해 실용적인 기술과 리더십을 배우고, 창업가 정신까지 얻는다”고 군 문화가 창업의 요람이라고 강조했다. 결은 많이 다르지만 결국 ‘군대가야 사람된다’인 셈인데. 20대 초반에 지겹게 들은 이야기를 낯선 외국어로 다시 듣는 기분이 묘했다.

텔아비브=임현석 기자 l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