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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언의 마음의 지도]내 마음이 아닌 내 마음

입력 | 2017-02-03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학자 서울대 의대 교수

 인류를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데, 그 자존심에 찬물을 확 부은 세 사람의 천재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고 그저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별 중의 하나임을 16세기에 세상에 알린 지동설의 코페르니쿠스입니다. 우리의 태양조차도 우주의 중심이 아님이 밝혀졌으니 이제는 더 말할 것이 없지요. 둘째는 인간이 신의 창조물이 아니고 유인원에서 진화된 존재라는 점을 19세기에 알린 진화론의 다윈입니다. 셋째는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로, 인간이란 그저 무의식에 휘둘리는 존재에 불과함을 19세기 말 세상에 설파해 인류의 자존심을 뒤집었습니다.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임을 굳게 믿고 있던 당시에 e메일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있었다면 프로이트는 악성 댓글의 홍수에 휩쓸렸을 것이고 정신분석학은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무의식을 탐구하기에 정신분석학을 심층심리학이라고도 합니다. 마음을 논하면서 의식만 관심을 갖는 풍토에서 오스트리아 빈대 의과대 출신의 프로이트가 무의식으로 가는 길을 활짝 열었습니다. 무의식은 그야말로 내가 의식하지 않는 상태에서 부지런히 나를 움직입니다. 프로이트가 만들어 낸 개념은 아니지만 깊게 연구해서 체계화하고 퍼뜨려 정신분석학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일상용어로 쓰게 되었습니다.

 무의식은 평소에 그 존재를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꿈, 말실수, 농담, 취중 진담에서는 쉽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프로이트가 인간의 마음을 읽어 낸 모델은 크게 두 가지인데 지형이론과 구조이론입니다. 처음 나온 지형이론을 폐기하지 않고 두 모델을 혼용하는 것이 대체적으로 프로이트 학파 정신분석가들의 현재 입장입니다. 이 글에서는 지형이론을 소개합니다.

 지형이론은 마음을 의식, 전의식, 무의식의 세 지역으로 나누어 봅니다. 빙산이라고 하는 커다란 얼음 덩어리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빙산의 대부분은 바닷물에 깊이 잠겨 있습니다. 의식은 물 위에 떠 있는 부분이어서 그냥 쉽게 보입니다. 전의식은 물에 잠겨 있으나 주의를 기울이면 들여다보이는 얕은 부분입니다. 무의식은 너무 깊게 잠겨 있어 그냥 들여다보아서는 절대 보이지 않는 부분입니다.

 이제 무의식 표출의 대표선수인 꿈을 활용해 지형이론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잠이 들면 마음은 풀어집니다. 깨어 있을 때의 긴장과 조심이 해제되면서 무의식의 것들이 의식의 세계로 올라오기 쉬워집니다. 무의식에는 본능적인 욕구들이 우글거리며 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성욕과 공격성입니다. 술에 취해 이성을 잃고 사고를 치는 행동이 주로 성적인 일탈과 폭력임을 참고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꿈을 꿉니다. 꿈이 이상합니다. 어떤 남자에게 맞았습니다. 전혀 모르는 얼굴입니다. 길을 가는데 그 사람이 갑자기 시비를 걸었습니다. 기분이 나빴지만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분이어서 그냥 지나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가 갑자기 내 뒤통수를 골이 흔들릴 정도로 때렸습니다. 한 대 치고 싶었습니다. 차마 그럴 수는 없어서 그냥 밀치고 지나갔습니다. 꿈에서 깨어납니다.

 잠에서 깨어나 기억하는 꿈, 발현몽은 상영 중인 영화와 같습니다. 비유하자면 발현몽은 영상물심의를 통과하고 상영한 영화입니다. 의식의 세계에 올려도 무난하다는 판정을 받은 겁니다. 발현몽과 달리 꿈의 원본인 잠재몽은 내용이 아주 적나라합니다. 

 위의 꿈에서 잠재몽을 만들어 낸 재료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사이가 아주 나쁩니다. 아버지가 그를 어려서부터 구박하고 욕하고 때렸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도 수시로 폭행합니다. 그는 아버지를 증오합니다. 맞은 만큼 갚아 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의식의 세계에서 패륜입니다. 너무나 잘 알지만 그렇게 하고 싶은 충동과 소망을 억제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이대로는 미칠 것 같습니다. 어제도 아버지에게 맞았습니다.

 잠이 듭니다. 꿈을 꿉니다. 꿈에서 아버지에게 내가 맞은 것보다 더 많이 갚았습니다. 이 사람의 잠재몽은 그대로는 의식의 심의를 통과할 수 없습니다. 도덕과 윤리에 어긋납니다. 영상물심의에서 지적받은 영화처럼 편집에 들어갑니다. 아버지를 전혀 모르는 남자로, 본인이 먼저 때렸지만 모르는 남자가 먼저 시비를 건 것으로, 그가 저지른 엄청난 폭행을 약간 밀친 정도로 바꿉니다. 꿈 작업을 해야 꿈이 의식의 세계로 올라올 수 있습니다.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꿈도 있습니다. 개꿈일 수도 있지만 의식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내용이어서 무의식의 세계로 억압시켰기 때문입니다. 보기 힘든 것을 벽장에 넣고 꽉 닫아 버린 것과 같습니다. 반대로 과거의 일을 한동안 까맣게 잊고 있다가 갑자기 기억하게 된다면 무의식의 창고에 억류되어 있던 불편한 기억이 갑자기 사면을 받아 석방되었다고 보면 됩니다.

 무의식이 있다는 근거로 거론되는 것 중에 말실수도 있는데 예를 들어 고등학교 때 나에게 손찌검을 했던 급우를 30년 만에 만나자마자 “어, 아직도 살아 있었네!”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온다면 겉으로는 반가움의 표시이지만 속으로는 억압되었던 기억이 공격적으로 불쑥 올라온 것입니다.

 무의식은 늘 우리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요즘 세상이 어지럽습니다. 그럴수록 내 마음, 내 무의식의 흐름에 최대한 신경을 써야 합니다. ‘이 사람은 왜 이러지?, 저 사람은 왜 저러지?’ 하다가 내 무의식의 흐름을 들여다보고 나를 이해할 기회를 놓칩니다. 물론 아무리 애써도 우리는 무의식의 통치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무의식의 배출 경로 중에 꿈이나 말실수 외에도 아주 흔한 것이 취중 진담입니다. 직장인들에게 충고를 감히 드린다면…, 취중 진담을 어쩌다가 전략적으로 쓸 수는 있겠으나 결론적으로 취중 진담은 매우 위험합니다. 폭탄주 마시고 직장 상사, 동료, 후배들에게 무의식의 것들을 쏟아 내면 부작용과 후유증이 매우 큽니다. 그러니 근무시간 중의 회의에서는 물론이고 저녁 술자리에서도 의식의 세계를 굳게 지키면서 계속 올라오는 무의식의 침입을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술은 요령 있게 마시면서 취중 진담을 의식하고 경계해야 사회생활에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
 
정도언 정신분석학자 서울대 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