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 기자
미국에서 총을 가진 사람은 많다. 시골에서는 사냥용, 도시는 호신용, 갱들은 살상용으로 장식장, 서랍 속이나 베개 밑에 총을 두고 산다. 2012년 통계에 따르면 총기를 가진 미국인이 48% 정도로 2명 중 1명은 총을 가진 셈이다. 2015년 통계 자료를 보면 하루 29명이 다른 사람이 쏜 총에 사망했다. 총기로 자살하는 사람은 하루 55명을 넘는다. 하루 평균 80~90명이 총 때문에 목숨을 잃는 셈이다.
미국의 유명 하드보일드 작가 짐 톰슨이 말했듯 미국은 총에 미친 ‘건 크레이지(Gun Crazy)’ 문화 속에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사람들이 미칠 정도로 좋아하는 것이 둘이 있는데 하나는 총이고, 다른 하나는 차(車)라는 농담도 있다. 자동차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경우가 적지만 총은 타인 살상의 경우가 많아지고 있으니 규제는 당연하다는 의견이 최근 미국 사회에서 주류를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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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총기 규제 법안이 통과되는 경우는 없다. 사실 법안 자체도 큰 임팩트가 없는 누더기 법안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규제 대상이 되는 총기의 종류를 줄이고, 총기 구매를 위한 대기 시간을 단축시키려는 보수파 의원들의 의견이 대부분 관철된다. 의원들은 총기 규제 문제에 손을 담그기를 꺼린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공화당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당 의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은 강력한 총기 규제론자였지만 대선 기간 동안에는 총기 문제를 부각시키는 것을 꺼렸을 정도다.
미국 사회에서 총기 규제가 왜 그리 어려운지는 미국의 헌법 정신과 독립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총기 옹호론자들이 과거 서부 개척시대 때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총기 소지권을 높은 범죄율과 총으로 인한 살상이 다반사인 현대 사회에서 그대로 유지하려고 고집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은 총기 규제와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최대 관심을 기울인 2개 정책은 불법 이민자의 무분별한 추방 방지와 총기 규제였다. 오바마 대통령이 강력한 추진력으로 밀어붙여 성사시켰던 불법 이민 추방 유예 행정명령은 트럼프 시대가 열리자마자 폐지됐다. 트럼프는 대선 후보 시절부터 총기 소지 권리를 수차례 얘기했으니 총기 규제 완화 법안이 미 의회에 상정될 날도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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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미국에서 총기 규제가 느슨해지면 이곳 저곳에서 총소리가 들릴 날이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무고한 시민들이 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매뉴얼이라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