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거인 이마트 ‘노브랜드 전략’의 성공비결
유통업계의 맏형인 신세계그룹과 이마트는 ‘혁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유통업에서의 혁신이라는 건 생각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까르푸나 월마트 등 이마트 등과 유사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글로벌 업체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런데 유독 유럽에서 초고속 성장을 하는 유통업체, 알디(Aldi)와 리들(Lidl)이 눈에 띄었다. 두 회사 모두 초저가 할인매장으로 독일에 본사를 두고 유럽 전역으로 체인을 확장하고 있었다. 모든 상품 구색을 갖추진 않지만 소비자들이 꼭 필요로 하는 제품을 구비하고 좋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내세운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이었다. 다른 대형마트나 창고형 매장에 비해 포장단위도 작았다. 할인마트가 아닌 ‘초저가 슈퍼마켓’의 개념이었다. 이마트 관계자들에게 하나의 질문이 던져졌다. “우리도 ‘어느 정도의 품질은 보증되지만 확실히 더 싼 제품’을 팔 수는 없는 것일까?”
○ 위기가 부른 혁신 ‘노브랜드(NO Brand)’
억지로 자체 브랜드를 만들고 홍보할 필요 없이 정말 필요한 기능과 포장으로만 내놓고 굳이 ‘네이밍’과 ‘브랜딩’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분명 승산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비자들이 PB 제품을 다소 찜찜하게 생각하거나 겉으로 내보이기 창피해한다는 점을 고려해 사용 시 브랜드가 거의 노출되지 않는 제품부터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건전지, 화장지, 물티슈 등의 소비재와 감자칩, 초콜릿 등으로 초기 노브랜드 제품군이 탄생했다. 처음에는 그저 호기심에 혹은 ‘싼 맛’에 물건을 집었던 소비자들은 ‘기대 이상의 품질’에 놀라기 시작했다. 입소문이 퍼졌고 찾는 고객은 점점 늘었다. 단순한 생활용품에서 여러 가전제품으로, 감자칩과 초콜릿 등 간단한 가공식품에서 다양한 식재료로 노브랜드 제품군은 확장돼 갔다. 원칙은 항상 같았다. 커피포트 하나를 만들더라도 ‘물 끓이는 기능’ 이외에는 그 어느 것도 넣지 않되 가격을 파격적으로 낮췄다. 약 1000개의 제품 구색이 갖춰진 2016년 여름 이후에는 ‘노브랜드 전문점’이 등장할 정도가 됐다.
○ 신속한 의사결정이 만들어내는 차별화
노브랜드 이전의 PB 제품은 특정 제조사의 특정 상품을 타깃으로 놓고, 그 상품보다 얼마나 싸게 팔 수 있는지를 목표로 개발됐다. 하지만 노브랜드는 특정한 타깃 제품을 놓고 ‘대체할 수 있는 저렴한 상품’을 내놓는 방식이 아니었다. 노브랜드 감자칩의 경우 프링글스라는 직접적 타깃이 존재했지만 이미 너무 많은 종류가 나와 있던 물티슈나 장난감, 1·2인분용 밥솥 같은 제품은 딱히 타깃 제품이 존재하지 않았다. 기존 PB 제품들처럼 명백한 타깃이 존재했다면 나올 수 없는 제품들이 ‘고객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사고했기에 대거 탄생할 수 있었다. 소비자들이 ‘꼭 필요로 했던 물건’, ‘필요한 데 시중 제품은 너무 크거나 비싸고 쓸데없는 기능이 많아서 사기 곤란했던 제품들’, 혹은 ‘굳이 비싼 돈을 내고 사먹고 싶지 않던 식품들’이 노브랜드에서 나왔고 소비자들은 ‘싸구려 제품이나 식품을 산다’는 느낌이 아니라 ‘현명한 소비를 한다’는 기분으로 적극 구매에 나설 수 있었다.
이마트가 이처럼 차별화된 자체 상품을 성공시키며 대기업으로서는 좀처럼 하기 힘든 혁신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벤처정신을 갖고 자체적으로 스타트업과 유사한 조직을 만들어 최소화된 의사결정으로 제품 기획과 개발을 추진했기 때문이었다. 노브랜드 TF팀은 이마트 내 식품 전문가 4명이 모여 조촐하게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모든 제품군의 뛰어난 바이어들에게 언제나 의견을 묻고 제안을 받을 수 있는 열린 구조의 조직이었다. 편제도 본부장 직속이었고 대부분의 결정은 본부장이 직접 내릴 수 있었다. 정말 중요한 문제는 곧바로 정용진 부회장에게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 시스템이었다. 제품기획, 아이디어, 개발전략 등의 상당 부분은 TF 팀원들에게 일임됐다. ‘실패해도 좋다’, ‘무엇이든 제대로 한 번 시도해 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빠른 의사결정과 실행을 가능케 하는 스타트업 조직문화’는 노브랜드 TF팀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이는 현재 기획운영팀, 식품개발팀, 라이프스타일개발팀 등으로 조직이 나눠지고 구성원도 30명으로 늘어난 상황에서도 여전히 ‘철칙’으로 여겨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