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루터 한 인간의 운명/뤼시앵 페브르 지음/김중현 옮김/360쪽·2만 원·이른비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교회 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못으로 박고 있는 모습. 페르디난트 포웰스가 1872년 그린 그림이다. 이른비 제공
이 책 저자가 본 루터와 독일 민족의 관계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그 유명한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교회 문에 붙이는 순간, 루터의 종교와 사상, 신조는 이미 새로운 해석의 과정을 거치게 됐다는 것이다. 마치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95개조 반박문에 든 정신은 빠르게 독일의 그것으로 체화되기 시작했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말이 이런 때 쓰일 수 있을까.
마르크 블로크와 더불어 1930년대 아날학파를 주도한 역사학자답게 저자는 당시 루터를 둘러싸고 있던 독일의 정치, 사회구조에 주목한다. 15, 16세기 독일은 인문주의로 무장한 이탈리아나 절대왕정의 영국과 달리 황제와 제후, 도시들로 분열돼 대립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이런 연유로 로마교황에게 세금과 경제적 이익을 갈취당하면서도 제지할 수 없던 무기력함에 독일인들은 깊은 좌절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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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두고 루터가 변절했다는 해석이 나왔지만 저자는 “당연한 귀결이자 오해”라고 말한다. 95개조 반박문을 내고 농민전쟁을 반대한 루터의 일관된 신조는 ‘내적 구원’이었지 ‘민중 해방’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예수를 유대 민족의 해방자로 오인한 열심당원이 오버랩되는 건 무리일까.
루터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비교적 중립적이다. 종교개혁의 영웅 혹은 민중의 변절자로 낙인찍지 않는다. 그보다 훨씬 입체적으로 루터의 삶과 사상을 추적하고 있다. 특히 남은 기록이 많지 않은 1517년 이전 루터의 성장기를 조명하는 데 각별한 공을 들였다. 95개조 반박문은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감상적 격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세속 학문을 공부하던 청년 루터가 중병을 앓고 영혼의 안식을 얻으려 수도사가 됐지만 오히려 율법주의에 갇혀 괴로워한 모습을 의미 있게 포착했다. 이런 경험은 결국 95개조 반박문을 쓰게 된 중요한 바탕이 됐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