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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석의 독서일기]누군가를 빛나게 해주는 ‘소리없는 영웅’들을 위해 박수를…

입력 | 2017-01-13 03:00:00

피천득 수필집 ‘인연’ 속 ‘플루트 플레이어’를 읽고




 지난해 말 우연히 책꽂이에서 피천득의 수필집을 발견했다. ‘인연’의 아사코는 잘 지내나 궁금해 펼쳐 봤다가 ‘플루트 플레이어’라는 글을 봤다. 깜짝 놀랐다. 평소 방송에 임하는 나의 마음가짐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아늑하고 아득했다.

 나는 방송에서 한 번도 일인자가 돼 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그럴 확률이 높다. 그래서 결심했었다. 첫째, 오래가는 병풍이 되자! 병풍은 물건을 돋보이게 해주지만 병풍 자체로도 가치가 있다. 둘째, 먼지나 물처럼 스스로 빈틈을 찾아 메우는 ‘틈새의 신’이 되자. 주인공들이 거대하면 그 몸집으로 인해 빈틈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 틈을 파고들자. 그것이 나의 생존전략이자 공존전략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MBC연예대상’에서 ‘복면가왕’ 팀이 ‘베스트 팀워크상’을 받았다. 나는 수상 소감을 말하는 PD 뒤에서 흐뭇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속으로 피천득의 글을 되뇌었다.

 “칭찬이거나 혹평이거나 ‘내’가 아니요 ‘우리’가 받는다는 것은 마음 든든한 일이다. 자기의 악기가 연주하는 부분이 얼마 아니 된다 하더라도, 그리고 독주하는 부분이 없다 하더라도, 그리 서운할 것은 없다. 남의 파트가 연주되는 동안 기다리고 있는 것도 무음의 연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베이스볼 팀의 외야수와 같이 무대 뒤에 서 있는 콘트라베이스를 나는 좋아한다.…하이든 교향곡 94번의 서두가 연주되는 동안은 카운터 뒤에 있는 약방 주인같이 서 있다가 청중이 경악하도록 갑자기 북을 두들기는 순간이 오면 그 얼마나 신이 나겠는가?”

 시상식에서 끝까지 팀워크를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다. 시상도 수상도 하지 않았고 공연자도 후보자도 아니었지만 끝까지 자리를 함께하며 오롯이 축하만 해주는 분들이다. 세 시간 동안 박수와 환호만 보내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음을 필자는 여러 해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물론 그 자리에 초대받지 못해 아쉬워하는 동료와 후배도 많다.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것 자체가 고마운 일이라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식장의 하객들처럼 주인공들을 현장에서 축하해주는 그들의 존재는 소중하고 애틋하다.

 2016년 MBC연예대상에서 수상, 시상, 후보, 공연이 아닌 축하를 맡아준 데프콘, 윤형빈, 산들, 양상국에게 박수를 보낸다. 내가 찾아내지 못한, 그리고 다른 시상식에서도 그런 역할을 해준 모든 분께 박수를 보낸다. 올해는 축하해주는 사람을 축하하고 싶다. 박수 치는 이들에게 박수 쳐주고 싶다. 누군가를 빛나게 해주는 분들을 빛나게 해주고 싶다.
 
이윤석 방송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