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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눈]국산 연구장비 편견을 깨자

입력 | 2017-01-09 03:00:00


이광식 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전 세계적으로 4차 산업혁명이 빅뱅처럼 일어나고 있다. 이 새로운 혁명은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르다. 대응을 제대로 못 하게 되면 국가 산업 기반이 순식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세계 각국도 4차 산업혁명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특히 제조업 강국인 독일과 일본은 제조업 혁신과 관련된 4차 산업혁명의 선두 주자다. 이들과 수출 경쟁을 하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이런 움직임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역시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고 있다. 정부는 2016년 8월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자율주행차 등 9가지 국가 전략 프로젝트 후보를 제시한 바 있지만, 단기 성과에 치중하는 국내 연구 여건으로는 적극적으로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이는 우리나라의 제조업 기반 기술이 아직 취약하기 때문이다. 휴대전화 제조 강국이지만 수많은 외국산 부품을 수입하고 있다. 이런 원천 기술을 개발하는 데 꼭 필요한 ‘첨단 연구 장비’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추격형 연구를 탈피하고 선도형 연구로 전환하기 위해선 연구 도구인 첨단 연구 장비를 국내에서 직접 만들어 쓸 수 있어야 한다. 연구 장비 산업은 국내 산업 및 관련 주변 산업 활성화로 이어져 경제적 파급효과도 매우 큰 분야다.

 국내 연구 현장에서 국산 연구 장비가 사용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국산 연구 장비의 품질 문제에 앞서, 연구 현장의 과학자들이 국산 제품을 신뢰하지 못해 구매를 꺼리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 역시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국산 연구 장비의 개발 역량 확보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나가고 있다. 한편으로 국내 연구기관과 전문 기업이 함께 노력해 연구 장비 개발에 필요한 원천 기술을 지속적으로 확보해 나가야 한다.

 연구 장비 공동 활용 전문기 관인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기초연)도 국산 연구 장비 전파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여러 기업과 함께 첨단 연구 장비 개발을 전담할 조직을 운영하고 있으며, 상용화된 국산 연구 장비를 구매해 설치하고 성능을 확인하고 있다.

 최근 국내 과학자들이 국산 연구 장비의 우수성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국산 연구 장비 활용 랩’을 기초연 대전 대덕본원과 전주센터에 설치했다. 국내 기업이 만든 액체 및 기체 크로마토그래피, 유전자증폭분석기, 주사전자현미경, 질량분석기 등을 설치해 운영 중이다. 이곳에선 국내 과학자들이 국산 연구 장비를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국산 연구 장비를 외국산 첨단 장비와 비교해 성능을 검증해 주는 일도 하고 있다. 국산 연구 장비의 우수성을 확인할 수 있게 되면 해외 시장 진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연구 장비 산업 기반을 닦는 일은 국내 산업체와 대학, 연구기관의 긴밀한 협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첨단 연구 장비를 개발하고 보급하는 과정에서, 과학기술 및 지식 집약형 산업을 동시에 발전시킬 수 있는 부가 효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기본에 충실하라’는 말이 있다. 연구의 기본 도구를 만드는 연구 장비 산업을 육성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과학기술 강국이 되기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이다. 4차 산업혁명 역시 첨단 과학기술이 산업으로 유입되며 일어나는 생태계의 변화다. 가까운 시일 내에 우리 과학자들이 우리 손으로 만든 연구 장비를 활용해 세계적인 변화를 이끌 첨단 연구를 주도하길 기대해 본다.

이광식 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