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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조숭호]반기문의 4강 외교

입력 | 2017-01-06 03:00:00


조숭호 정치부 기자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외교 전문가다. 누구보다 외교 무대에서 쌓은 경험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가 대선 후보가 된다면 외교 경험은 장점이 될까, 단점이 될까. 국내 정치에서 덜 쌓은 부족함을 외교 전문성으로 메울 수 있을까.

 반 전 총장은 지난해 12월 31일 퇴임 직전까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만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불발됐다. 당선 3일 만에 이뤄진 통화에서 트럼프는 “점심 한번 합시다”고 했지만 끝내 만남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트럼프가 당선 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제외하면 외국 정상을 만난 적이 없는 건 사실이다. 현직 대통령이 있는데 취임도 하기 전에 정상급 인사를 만나는 게 부적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 타워(뉴욕 맨해튼 5번가)와 유엔본부(1번가)는 걸어서도 갈 거리다. 바쁜 일정 때문에 못 만난 게 아니라 안 만난 것으로 비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트럼프는 대선 기간 동안 반 전 총장의 업적인 기후변화대응과 파리협약을 명시적으로 반대했다.

 반 전 총장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도 통화를 못 했다. 12월 27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이 그 대신 통화하며 “그동안 협조에 대해 푸틴 대통령의 감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트럼프와 푸틴의 속내를 알기는 쉽지 않지만 면담·통화 불발은 두 사람이 반 전 총장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과는 12월 26일 통화가 이뤄졌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한중 관계가 껄끄러운 상황에서 시 주석은 왜 통화에 응했을까. 의도가 있지 않을까. 중국은 한국 정부의 만류에도 자국 외교관을 한국까지 보내 야당 의원들을 만나게 하고, 주중 한국대사는 안 만나는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야당 의원단을 접견한 뒤 사진까지 외교부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시 주석과 같은 날 이뤄진 아베 총리와의 통화도 보기 나름이다. 비틀어서 보자면 얼마든지 부정적으로 볼 수 있다. 반 전 총장은 지난해 1월 1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야권이 반발하는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 대해 “올바른 용단을 내려 역사가 높이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일러 정상과의 만남 여부를 놓고 과잉 해석을 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론은 외교를 국내 상황과 동떨어진 ‘진공의 영역’으로 봐주지 않는다. 국내 정치의 연장이 외교이고 외교 현장에서 벌어진 여진이 국내 정치에 다시 영향을 준다.

 반 전 총장이 재임 동안 각국 정부와 맺은 광범위한 관계는 ‘정치인’ 반기문에게는 자산이 될 수도, 부채가 될 수도 있다. ‘전문 분야인 외치는 해결됐고 내치만 집중하면 된다’는 인식이라면 생각 자체를 바꿔야 할 것이다. 어디까지가 외치이고, 어디부터가 내치인지 구분 자체가 어렵다.
 
조숭호 정치부 기자 sh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