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러시아의 대선 개입 해킹 의혹과 관련해 초강경 보복 조치를 단행했다. 러시아도 상응하는 보복 조치를 예고하고 있어 미러 간 신냉전 구도가 확산될 것으로 우려된다. 미국은 7월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주요 인사들의 e메일이 위키리크스에 폭로된 후 해킹 배후로 러시아를 지목해왔다.
미 백악관과 재무부는 29일(현지시간) 러시아 외교관 무더기 추방, 미국 내 러시아 공관시설 폐쇄, 해킹 관련 기관과 개인에 대한 경제제재를 골자로 한 대(對)러시아 제재안을 공식 발표했다. 백악관은 성명에서 이번 해킹을 '매우 중대하고 악의적인(significant and malicious) 사이버 활동'으로 규정했다. CNN은 "북한 이란 등을 제외하고 러시아와 같은 군사대국을 상대로 내려진 전례없는 제재 조치"라고 평가했다.
미 정부는 우선 워싱턴의 주미 러시아대사관과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에 근무하는 외교관 35명을 추방 조치했다. 국무부는 이들에게 29일 이후 가족과 함께 72시간 안에 미국을 떠나라고 명령했다. 이들 35명은 대부분 정보 관련 업무를 하고 있지만 이번 해킹에 직접 관련된 증거는 없는 만큼 러시아에 대한 보복성 조치임을 분명히 했다.
광고 로드중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별도의 성명에서 "해킹은 러시아 고위층이 지시한 것"이라며 사실상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해킹의 배후로 겨냥했다. 그는 이어 "이번 조치들이 러시아의 공격적인 행위에 대한 대응의 전부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시점과 장소에서 우리의 다양한 조치를 계속할 것이며 일부는 공개되지 않을 것"이라며 추가 제재 조치를 시사했다.
퇴임을 목전에 둔 오바마 대통령이 러시아에 대해 전례없는 제재 조치를 내린 것은 러시아의 대선 개입을 묵과하지 않겠다는 것은 물론, 트럼프의 친러 외교 정책을 사전에 흔들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이날 제재 조치 발표 후 성명에서 "미국은 이제 더 크고 더 좋은 일로 넘어가야할 때"라고 말한 뒤 "다만 나라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다음 주에 정보당국 관계자들을 만나 이번 사안에 대한 업데이트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