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사망자 2000명 줄이자]<25·끝> 교통선진국을 가다 독일 버스의 엄격한 면허 관리
프랑크푸르트와 다름슈타트를 잇는 독일 최초의 아우토반을 대형 화물차량이 달리고 있다. 독일의 대형 차량들은 고속도로를 달릴 때 바깥 차로를 절대 벗어나지 않는다. 프랑크푸르트=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지난달 말 독일 함부르크 외곽의 운전면허학원 강의실. 수강생들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칠판을 빼곡히 채운 복잡한 수식이 잘 이해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이날은 버스 운전면허 기초이론과정 2주 차 수업의 하루. 수강생들이 가장 어려워한다는 ‘교통물리학’ 수업이었다. 차량 속도와 무게에 따른 제동거리를 배우는 시간이다.
복잡한 셈법이 나오자 한 수강생이 “일반 승용차와 버스가 어떻게 다르냐”고 물었다. 강사인 크리스티안 슈뢰더 씨(43)는 제동거리 실험 동영상을 보여주며 “시속 100km로 달릴 때 승용차보다 버스의 제동거리가 20% 이상 길다”고 설명했다. “승객과 화물이 더 많을수록 속도를 낮추거나 차량 간격을 늘려야 한다”는 그의 설명에 수강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의가 끝난 뒤 “면허 따는 과정이 너무 복잡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수강생 자이이트 카이마츠 씨(32)는 “내용이 지루하고 어려운 건 맞지만 나와 승객의 안전을 위해서는 당연히 배워야 한다”고 답했다. 강사 슈뢰더 씨는 “면허학원의 목적은 시험 합격 요령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운전자가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과의 차이는 면허시험에서 더 크다. 한국은 1, 2종 보통면허가 있으면 장내 기능시험만 치르면 된다. 학과와 도로주행 평가가 없다. 그 대신 교통안전공단에서 버스운전 자격시험을 치르거나 3일(총 24시간) 동안 교통안전 체험교육을 받아야 한다. 버스로 실제 도로를 달려본 적 없는 운전자가 승객을 태우는 것이다.
반면 독일은 75분 동안 도로주행을 포함한 실기시험을 치른다. 실제 도로에서만 약 90시간 동안 운전대를 잡는다. 고속도로 14시간과 야간주행 8시간을 이수해야 하고, 언덕이나 커브 터널 등 사고 위험이 높은 구간을 직접 달려본다. 면허 취득에 최소 3개월, 길게는 6개월씩 걸리는 이유다.
면허 갱신도 까다롭다. 5년마다 재교육 35시간을 이수해야 한다. 새로 개발된 차량 안전장치나 개정된 도로교통법을 익히기 위해서다. 50세가 넘으면 ‘신체 능력에 이상이 없다’는 의사 진단서를 반드시 첨부해야 한다. 운전면허시험을 관리하는 독일기술검사협회(TUV)의 프랑크푸르트 지역 책임자 마티아스 라이히센링 국장은 “50세 이후부터는 기초 체력이나 시력 문제로 면허를 잃는 운전자가 많다”며 “버스는 일반 차량보다 갱신 조건이 훨씬 까다롭다”고 말했다.
신체 능력에 문제가 생긴 운전자뿐 아니라 도덕적 결함이 있는 운전자도 면허를 유지할 수 없다. 일반 운전자의 음주단속 기준은 혈중 알코올 농도 0.05%이지만 버스는 술 한 잔만 마셔도 아예 운전을 못 한다. 영업 중 음주운전 단속에 걸리면 다시 면허 취득을 할 수 없다. 강력범죄 전력자도 면허를 박탈하기 때문에 버스를 운전할 수 없다.
○ 양보가 몸에 밴 버스 운전사
독일 버스가 얼마나 안전한지 살펴보기 위해 프랑크푸르트에서 인근 소도시까지 운행하는 고속버스를 직접 탑승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창가와 천장 비상구 옆에 설치된 10개의 탈출용 망치였다. 출입문도 앞뒤로 2개가 있어 사고가 나도 재빨리 빠져나갈 수 있어 보였다.
시민들의 만족감은 당연히 높다. 함부르크 시내에서 만난 크리스티네 마이어 씨는 “독일의 버스 운전사들은 항상 양보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며 “25년 동안 택시를 운전했지만 버스 곁을 주행할 때 위험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함부르크·프랑크푸르트=박성민 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