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의 한 도시가스 관리 대행업체는 A특성화고와 산학실습협약을 체결하고 현장실습생을 추천받아 교육해 왔다. 현장 실습시간은 하루 최대 7시간(주당 35시간)으로 정해져 있고, 당사자 합의에 따라 하루 1시간(주당 5시간)까지만 연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회사의 실습생은 하루 9시간 이상 일하며 사실상 근로자처럼 일해야 했다. 실습 3개월 동안의 연장 근로수당 89만7120원 역시 전혀 지급하지 않았다.
올해 여름방학에 한 국책연구기관에서 인턴으로 근무한 B 군 등 청년 9명은 연차 유급휴가를 사용하지 않고 퇴직했다. 인턴 역시 근무 기간에 따라 연차휴가가 부여되고, 이를 사용하지 않으면 당연히 연차 미사용 수당을 받을 수 있다. 이들은 이 사실을 전혀 몰랐고, 국책연구기관 역시 이들에게 연차수당(총 226만6000원)을 한 푼도 지급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2월 내놓은 '인턴 가이드라인'이 현장에서 잘 지켜지고 있는지 점검한 '열정 페이'(열정을 빌미로 한 저임금 노동을 일컫는 신조어) 근로 감독 결과를 26일 발표했다. 고용부가 인턴을 다수 고용한 사업장 345곳과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을 받고 있는 155곳 등 총 500곳을 조사했더니 인턴 고용 사업장 59곳(17.1%)은 인턴을 사실상 근로자처럼 쓰거나 연장 근로수당 등 1억6700만 원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실습 사업장 22곳(14.2%) 역시 77명의 임금 800만 원을 체불한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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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조사에서는 대학생인 산학실습생에게 단순 업무만 시킨 사례도 적발됐다. 서울 강남구에서 전시 기획을 하는 C 사는 한 대학과 협약을 맺고 성수기인 매년 2월과 8월 산학실습생을 받아 왔다. 그러나 고용부 조사 결과 교육 훈련 프로그램은 전혀 없었고 실습 역시 서류 분류, 전화 응대 등 직원 보조 업무가 대부분이었다. 또 약정 실습 기간(4주)보다 한 주 더 실습생을 고용하고, 휴일 근로까지 시키면서도 월급은 고작 교통비 명목으로 1인당 49만 원만 줬다. 고용부는 이 회사의 실습 과정이 교육 훈련 목적이 아니라 노동력 활용에 있다고 보고, 현장실습생을 근로자로 인정해 총 243만7440원을 지급하도록 했다.
고용부는 청년들의 '열정'을 이용한 기업들의 이런 '갑질'이 매년 더 심각해지고 있다고 보고 노동법을 상습적으로 위반하는 기업의 명단을 공개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로 했다. 정지원 고용부 근로기준정책관은 "주요 프랜차이즈 회사의 직영점과 가맹점의 노동법 위반 감독 결과를 지표화해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