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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쓰레기 종량제

입력 | 2016-12-15 03:00:00

고급 주상복합아파트 ‘쓰레기 자동집하 설비’ 확산
각층 투입구에 쓰레기 넣으면 집하장서 종량제 봉투에 담아 수거
‘단지별 종량제’로 비용은 균등 부담… 발생자 부담 원칙 어긋나 논란




 

서울의 한 주상복합아파트 복도에 설치된 쓰레기 투입구.

지난해 입주를 완료한 서울 용산구의 A주상복합아파트에는 층마다 벽면에 쓰레기 투입구가 달려 있다. 주민들은 굳이 지상으로 내려가지 않고 현관문만 나가면 손쉽게 쓰레기를 버린다. 이렇게 버려진 쓰레기는 자동으로 집하장으로 모이고 압축 과정을 거쳐 100L 규격의 종량제 봉투에 담겨 수거된다. 봉투값을 포함한 수거에 드는 비용은 가구별로 균등하게 관리비에 포함된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신도시 지역 대단지 아파트를 중심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쓰레기 자동집하 설비’가 수년 전부터 서울시에도 속속 설치되고 있다. 도입 초기에는 단지 미관과 수거차량 통행으로 인한 안전사고 방지 등을 위해 실외에 밀폐형 수거함을 설치해 한곳에 쓰레기를 모으는 방식이 주로 쓰였다. 최근 새로 지어진 고층 주상복합아파트에는 쓰레기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수고를 덜기 위해 층마다 투입구를 만들고 있다. 설비업체 관계자는 “최근 지어진 고층 주상복합아파트의 경우 대부분 층별 쓰레기 투입구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A아파트처럼 쓰레기 투입 단계가 아닌 수거 직전 단계에서 공동 부담한 종량제 봉투에 담아내는 ‘단지별 종량제’ 방식도 덩달아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종량제 법규 위반은 아니지만 ‘발생자 부담 원칙’이라는 취지를 흐린다. 1995년 시행된 쓰레기 종량제는 시행 전 하루 평균 6만 t에 이르던 생활폐기물 발생량을 1만 t가량 줄이는 효과를 냈다. 쓰레기양을 줄이기 위해 분리 배출에 신경을 쓰는 등의 국민적 노력을 이끌어 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단지별 종량제 방식은 개인이 배출량을 줄이더라도 지불 비용이 줄어드는 폭이 극히 미미할 수밖에 없다. 배출량 감소를 유인하는 인센티브가 없어지는 셈이다. 이 때문에 전체 쓰레기 배출량이 증가하는 이른바 ‘공유지의 비극’(공유지의 희귀한 공유 자원은 어떤 공동의 강제적 규칙이 없다면 많은 이들의 무임승차 때문에 결국 파괴된다는 이론)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음식물 쓰레기 배출 과정에서 이미 이 같은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2013년 서울시가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를 전면 시행했을 당시 단지별 수거함에 버려진 총량을 합산해 가구별로 수수료를 균등 부담하는 방식이 상당수 아파트에서 쓰였다. 배출량은 줄지 않았고 1, 2인 가구의 불만은 높아졌다. 이후 전용 종량제 비닐봉투에 담도록 하거나 배출 시 무게를 측정하는 전자태그(RFID) 수거함이 속속 도입됐다.

 하지만 대부분 주상복합아파트 주민들의 경우 종량제 비용의 균등 지불에 대한 불만이 없어 해결책을 찾기 힘든 상황이다. 서초구 아파트의 한 주민은 “돈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쓰레기를 덜 배출한다고 불만을 가지는 이웃은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 같은 단지별 종량제 방식이 종량제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보고 ‘쓰레기 수수료 종량제 시행지침’을 통해 수년 전부터 “자동집하 시설의 경우 투입 단계에서부터 종량제 봉투에 담도록 설치해야 한다”고 명시했지만 강제성은 없다. 환경부 관계자는 “폐기물 수거는 지방자치단체의 고유 행정이라 법률 이상에 대한 사항을 강제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