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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송평인]청문회장의 무례한 “거수해 보세요”

입력 | 2016-12-08 03:00:00



 발성 박수 거수 기립 표결은 일반적인 투표와 달리 비밀이 보장되진 않지만 간단히 찬반을 따져볼 수 있어 많이 이용된다. 발성이나 박수 표결은 찬성 측과 반대 측 중에서 소리가 큰 쪽이 이기는 표결이다. 하지만 압도적 차이가 나지 않을 경우 어느 쪽이 우세한지 구별하기 힘들다. 거수나 기립 표결은 일일이 찬반을 셀 수 있어 발성이나 박수 표결보다 훨씬 정확하다. 그리고 거수보다는 기립이 더 의식성(儀式性)이 강해 국회만 해도 예전엔 기립 표결이 원칙이었다.

 ▷일상에서는 거수 표결이 가장 많이 이용된다. 회사에서는 상사가 부하 직원들에게 찬반 의사를 종종 거수로 묻는다. 그러나 부하 직원이 상사들을 앞에 놓고 거수해 보라고는 하지 않는다. 상하관계를 떠나 연소자와 연장자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손을 드는 행위(거수)나 일어서는 행위(기립)가 별것 아니긴 하지만 그것도 능동적인 움직임이기 때문에 연소자가 연장자에게 주문할 때는 무례하다고 느껴지는 면이 있다.

 ▷그제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장에서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기업 총수 9명을 쭉 앉혀놓고 전국경제인연합회 해체에 반대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고 주문했다. 총수들은 처음에는 어색해서 쭈뼛쭈뼛 눈치를 보더니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먼저 손을 들자 몇몇이 따라 들었다. 어제 신문을 보니 동아일보를 비롯해 조선, 중앙, 한겨레신문이 대기업 총수들이 안 의원의 ‘강요’에 따라 거수하는 사진을 1면에 실었다. 그제 국정조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던 모양이다.

 ▷안 의원은 50세다.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은 78세, 손경식 CJ 회장은 77세, 구본무 LG 회장은 71세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 3명은 60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빼고는 모두 연장자다. 군대 신병교육대에서 새파랗게 나이 어린 조교가 나이 든 신참병들의 군기를 잡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전경련 해체 여부가 정말 궁금하면 한 사람씩 따로 물어보는 수고 정도는 하는 게 기본적인 예의다. 28년 전 일해재단 청문회에서도 이런 무례한 장면은 없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