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용 논설위원
창조를 분배한 朴정부
지금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을 강조하는 목소리에는 혼란에 대한 불안감이 묻어 있다. 퇴진 계획표를 못 박아두지 않으면 광장의 분노가 정치를 집어삼킬 것이라는 경고다. 하지만 질서를 강조할수록 혼란이 커지는 걸 보면 진실이 뭔지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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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제적 질서와 ‘질서 있는 퇴진’으로 언급되는 정치적 질서는 태생이 같다. 언뜻 연결이 안 되겠지만 기득권층이 쌓아온 정치경제적 진입장벽이 이들 질서의 근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쉽다. 신뢰가 바닥까지 떨어진 상황이라면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야 하지만 변화 자체를 두려워하는 게 ‘질서주의자’의 속성이다.
정치적으로 다음 대통령을 뽑기 위한 최소한의 여유가 필요할 수 있다. 탄핵은 질서 있는 퇴진의 방법이다. 그러나 ‘박근혜표’ 창조경제를 계속 질서 있게 발전시켜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은 경제를 과거로 돌리는 것이어서 위험하다. 박근혜 정부는 전국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대기업들이 운영하도록 떼어줬다. 경북과 대구의 정보기술(IT)은 삼성, 대전의 기술사업화는 SK, 광주의 수소연료전지는 현대차 등 창조를 분배했다. 창조는 초가지붕을 기와로 교체하는 산업화 시대의 새마을운동으로는 불가능한 가치라는 걸 박 대통령은 몰랐다.
정부가 확장적 재정으로 성장률을 조금 높이는 데 전력투구하는 걸 보면 시야가 좁은 건 경제부처도 마찬가지다. 향후 세계는 불황으로 달리는 폭주기관차다. ‘미국 트럼프가 돈을 푼다→미국 재정적자가 늘어난다→금리와 달러 가치가 오른다→세계 경제가 불황에 빠진다→주변부인 한국은 손도 쓰지 못하고 위기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는 공포의 여정이다. 10조 원을 더 써서 성장률 0.2%포인트 올리는 게 무슨 의미인가.
기업 ‘놀이터’ 만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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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