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의 ‘경진북정’ 국방정책
이 놀라운 성공의 비결은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첫째, 리스크에 대한 대처와 관리를 최대한 유연하고 신속하게 해냈다. 리스크가 동일하다고 해서 이에 대한 관리방식도 항상 같아서는 안 된다는 게 당시 조선 조정과 세조의 생각이었다. 여진족을 어르고 달래던 조선은 여진족이 어느 선을 넘어 리스크의 양상이 변하자 전혀 다른 대응방식을 쓰기 시작했다. 선물과 벼슬 등으로 반항적인 부족의 핵심 리더들을 달래던 조선은 그들이 결국 조선을 배신하자 강경책으로 선회한다. 세조는 자신의 최측근인 신숙주를 총사령관으로 삼아 정벌에 나선다. ‘이번에도 역시 회유하려 할 것’이라고 오판했던 여진족은 적잖게 당황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둘째, 전쟁이 시작되자 현장 지휘관에게 전권을 위임했다. 예부터 훌륭한 리더는 방향을 말해 줄 뿐 그 길로 가는 방법은 현장에 맡겼다. 이때도 그랬다. 세조는 현장 사령관인 신숙주가 인력과 물자를 자유롭게 동원할 수 있도록 해당 지역의 모든 수령이 신숙주의 명령에 따르도록 했으며 그가 재량껏 ‘현지의 관리들에 대한 징계와 처벌’을 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세조는 다른 대신들이 ‘상황이 달라졌다’며 정벌 중단을 주청했을 때에도 “내가 신숙주에게 맡겼으니 다른 이들이 아뢰는 것은 따르지 않겠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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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국방외교 정책의 최고 성공 사례로 꼽히는 ‘경진북정’은 급박하게 변화하는 경영환경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경제전쟁’을 치르고 있는 한국의 기업들, 나아가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정치인들에게도 큰 교훈을 준다. 기업인들은 물론이고 정치인들도 다시 역사를 들여다봐야 할 때다.
김준태 성균관대 동양철학문화연구소 연구원 akademie@skku.edu
정리=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