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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국정원, 최순실 보고서 ‘0건’ 비선 앞에 마비된 정보망

입력 | 2016-12-03 03:00:00

[최순실 게이트]




 국가정보원이 자체 수집·생산한 보고서나 정보 문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 언론 보도를 스크랩한 일부 문건 외에 최순실 씨(60·구속 기소)와 관련한 의미 있는 정보 보고서가 사실상 0건인 것으로 2일 확인됐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올 8월 최 씨 관련 의혹이 불거지기 전까지 국정원에서 최 씨의 동향이나 비리 등을 담은 보고서 및 정보 문건을 단 한 건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회 정보위원회 등에서 국정원 추모 국장이 안봉근 전 대통령국정홍보비서관과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에게 최 씨 관련 정보를 비선 보고해왔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과 관련해 국정원은 지난주부터 자체 감찰을 해왔다.

 이병호 국정원장은 최근 “국정원의 직무 범위를 벗어난 사항이라 최순실 사태가 보도되기 전까지는 보고받은 바 없다”고 말했지만 이는 직무유기에 가깝다는 지적이 많다. 국정원은 국가 안보를 위한 국내외 정보를 총괄하는 최고 정보기관이다.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도 최태민 관련 보고서를 작성해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와 관련해 ‘국정원 댓글 사건’ 이후 국정원이 국내 사건에 대해서는 공식 문건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라는 풀이도 나온다. 그러나 국정원은 이에 대해 “해당 사항 없음”이라고 짧게 부인했다.

 추 국장이 국정원 공식 보고 시스템을 벗어나 별도로 정보를 수집해 안 전 비서관 등에게 전달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국정원을 포함해 대통령 측근과 친인척을 감찰하는 대통령민정수석실도 최 씨의 행동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도대체 왜 ‘최순실’ 이름 석 자에 국가정보 시스템이 마비된 것일까. 현 정부 사정을 잘 아는 전현직 청와대 및 사정당국 관계자들은 크게 세 가지를 그 이유로 꼽았다.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을 중심으로 한 폐쇄적이고 비밀스러운 측근 구조가 첫 번째 원인으로 꼽혔다.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47·구속 기소)과 대선 캠프 이전부터 함께 일해 온 한 여권 인사는 “정 전 비서관과 많은 일을 함께 했지만 최 씨에 대해 언급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최 씨는 철저하게 문고리 3인방 뒤에 숨어 활동했기 때문에 이들과 가까이 있는 사람들조차 최 씨의 존재를 몰랐다는 얘기다.

 두 번째는 최 씨가 ‘자연인’ 신분이다 보니 정보당국이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최 씨는 박 대통령의 친인척이나 공직자로서의 대통령 측근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친인척과 측근 담당인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산하 민정비서관실의 특별감찰반은 최 씨의 전남편 정윤회 씨나 최 씨에 대한 의혹이 불거졌을 초반에도 “업무 영역이 아니다”라고만 대답했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설 때까지 참모들은 손쓸 도리가 없는 상황이 계속됐다.

 마지막으로는 2014년 ‘정윤회 문건 사건’ 파동의 부작용이 이유로 지적됐다. 이 사건 이후 민정수석실이나 경찰과 검찰, 국정원 등 사정기관들은 최 씨나 정 씨 등과 관련한 정보의 생산을 극도로 꺼렸다. 당시 조응천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이 정 씨 관련 허위 문건을 생산해 기소되는 등 사달이 난 뒤였기 때문이다. 사정기관의 정보관 C 씨는 “문건 파동 이후 ‘VIP 측근’ 관련 정보 보고를 올렸다가 내부에서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살벌했던 분위기를 전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경찰이나 국정원에서 모인 정보가 민정수석실로 모이는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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