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고정 패널 최송죽-이안니 씨
《“지난 주말 광화문에서 촛불집회를 봤다 말입니다. 아이쿠, 북조선에서 (선전물로) 보던 싸움이 벌어지나보다 싶었디요. 그런데 거리에 애기들도 많고 다들 질서를 잘 지키는 겁니다. 솔직히 아직도 이런 게 낯설지만…. 다시 깨달았습니다. 아, 남조선은 그래도 이렇게 모여 할 말 할 수 있는 세상이구나.”》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아디지털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최송죽 이안니 모녀. 올해 초 7년 만에 생사를 확인하고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최근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출연하며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에이, 처음엔 싫다고 했습니다. 사실 이만갑 보며 다 거짓말이라 생각했습니다. 북조선 얘긴데 처음 듣는 게 너무 많더란 말입니다. 하도 딸이랑 제작진이 ‘맘대로 해도 된다’고 졸라서…. 근데 (출연자들) 만나보고 알았습니다. 우린 여행을 못 하고 평생 살던 데만 살아서 모르는 게 많았던 겁니다. 평양도 오빠 죽었을 때 ‘전사증’(군용 사망확인서)받으러 이틀 가본 게 전부란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 모녀는 출연을 떠나 이만갑을 너무나 사랑하는 팬이 됐다. 제작진이 하나같이 친절하고 예의 바르기 때문이었다. MC 남희석은 젠틀했고, 박은혜는 따뜻했다. 연예인 패널과 제작진도 마찬가지. 이 씨는 “출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개인사도 상담할 정도로 가족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남조선에서 제일 놀란 게 그겁니다. 내 이름에 ‘님’ 자를 붙이더란 말입니다. 우린 장군님한테만 허락되는 건데. 아, 날 사람으로 존대하는구나. 기분이 좋았지요. 근데 이 자릴 빌려서 박은혜 씨한테 해명할 게 있습니다. 처음에 ‘아지미’라 부르니 ‘아줌마’인 줄 알고 당황하는 겁니다. 우린 젊고 예쁜 여성을 ‘아지미’라고 부릅니다. 박은혜 씨가 결혼도 안 한 걸로 알았어요.”
엄마와 딸은 이제 딱히 큰 욕심이 없다. 어미는 죽은 줄 알고 제사까지 지냈던 딸을 찾았다. 딸내미는 생지옥에서 고생하던 가족을 끝내 구해냈다. 뭘 더 바라겠나. 허나 둘은 4일 방송될 이만갑 5주년 특집을 찍으며 또 하나의 소원을 살며시 품었다.
“그날 촬영은 기분이 묘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출연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으니 나도 모르게 ‘통일’이 떠오르더란 말입니다. 통일이 딴 게 있습니까. 어디든 맘대로 가고, 누구든 맘껏 만나고. 하루 빨리 당당하게 평양 가서 이만갑 찍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촬영 끝나면 아들딸 손잡고 고향에 갈 겁니다. 내 손으로 지어 올린 귀틀집에 가야죠. 온갖 일이 다 떠오르겠지만….”
평양에서 ‘이제 만나러 갑니다’라. 아, 그땐 ‘이제 만났습니다’로 바뀔는지도. 그렇게 만나러 가는 날은 햇빛이 쨍쨍하면 좋겠다. 서울도 평양도, 이만갑도.
정양환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