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분할 통한 지배구조 개편 확산
○ 주목받는 SK와 현대차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달 그룹 최고경영자(CEO) 세미나에서 ‘과감한 인수합병(M&A)을 통한 신성장동력 확보’ 등을 내세우며 강도 높은 그룹 재편 가능성을 시사했다.
광고 로드중
SK그룹으로서는 ‘손자회사’인 SK하이닉스의 지위를 큰 출혈 없이 ‘자회사’로 격상시키는 게 큰 과제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손자회사는 다른 회사를 M&A할 때 지분을 100% 확보토록 돼 있어 손자회사를 통한 적극적인 M&A 전략은 힘든 상태다.
SK텔레콤이 투자 부문 회사인 SK텔레콤홀딩스(가칭)와 사업 부문 회사로 인적 분할한 뒤 SK㈜와 SK텔레콤홀딩스가 합병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나온 배경이다. 이렇게 되면 SK하이닉스는 통합 지주회사의 자회사가 된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SK그룹은 사업 포트폴리오를 정유·화학, 통신, 정보기술(IT)로 재편했다”며 “3대 포트폴리오의 한 축인 IT사업을 손자회사로 보유한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분석했다.
SK그룹은 일단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SK그룹 관계자는 “최 회장 일가의 지주사 지분이 매우 높은 수준이고 삼성과는 전혀 상황이 다르다”며 “현재로선 추가 재편은 검토한 바 없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는 현대자동차그룹도 지배구조 재편에 나설지 주목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등이 여전히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로 얽혀 있어 해소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쉽게 추진할 수 없는 것은 역시 돈 문제다.
광고 로드중
현대차가 M&A나 인적 분할 같은 대규모 이벤트 없이 최소한의 변화를 추진하면서 장기적으로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삼성이 감당해야 했던 기회비용, 시간, 사회정치적 논란을 목격했다는 이유에서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순환출자구조의 핵심 축인 현대모비스, 현대차, 기아차 사이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며 “아직 정 회장의 경영능력이 건재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문제”라고 말했다.
○ 한발 앞서 지배구조 재편 나선 기업들
더불어민주당의 박영선, 박용진 의원 등이 20대 국회에서 재발의한 상법 개정안은 기업이 인적 분할을 추진하는 경우 자사주 활용을 제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자사주를 이용해 대주주의 기업 지배력을 부당하게 높이지 말아야 한다는 명분이다. 또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내 공익법인이 계열사 지분을 보유한 경우(100% 보유 제외) 의결권 행사를 금지한다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발의돼 있다.
이런 법안들의 통과 가능성은 19대 국회보다 상대적으로 높아진 상태다. 여소야대 국회가 만들어진 데다 ‘최순실 사태’ 이후 여당이 거의 기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기업들로서는 더 이상 지배구조 재편 작업의 시기를 늦출 수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광고 로드중
식품업계에서도 지배구조 재편이 활발하다. 지난달 크라운제과에 이어 22일에는 오리온과 매일유업이 인적 분할 계획을 발표했다. NH투자증권은 “크라운제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는 오리온, 매일유업의 지주회사 전환 결정은 최근 야당의 국정 영향력 확대로 인한 경제민주화 법안들의 국회통과 가능성 상승과 관련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곽도영 now@donga.com·이은택·김창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