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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에 살다/장명희]사람 관계를 배려하는 숨겨진 공간들

입력 | 2016-11-29 03:00:00


덕평휴게소 화장실의 선반 달린 문고리(왼쪽 사진), 논산 윤증 선생 고택의 내외담(가운데), 대구 남평 문씨 고택 수백당의 섬돌 댓돌 등. 섬세한 배려가 돋보인다.

장명희 한옥문화원장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감동받을 일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것도 화장실의 작은 시설물 때문에. 휴게소에서 화장실에 갈 때 많은 이가 휴대전화를 들고 있다. 운전자라면 자동차 열쇠도 함께. 그런데 막상 화장실 안에는 작은 물건들을 올려놓을 곳이 마땅치 않아 난감하다.

 영동고속도로 하행선의 덕평휴게소 화장실 문고리에는 자그마한 선반이 일체형으로 달려 있다. 문고리를 걸면 선반이 평평하게 펼쳐지는 아주 단순한 구조다. 그런데 크기며 위치가 휴대전화와 열쇠를 올려놓기에 안성맞춤일 뿐 아니라 나올 때 절대 물건을 두고 나올 일도 없다. 이렇게 간단한 장치를 왜 여태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었던 걸까? 이용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적극적으로 찾고 해결하려는 마음이 이끌어 낸 결과다.

 그 휴게소에는 건축 콘셉트가 ‘친환경’이라는 것,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한 바 있다는 것과 기타 여러 시설물에 대한 설명이 게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작 나를 감동시킨 것은 화장실의 문고리였으며 그 감동은 건축의 진정성에 대한 신뢰로까지 이어졌다.

 경남 함양에 있는 정여창(鄭汝昌) 선생의 고택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은 문지방 가운데가 부드럽게 아래로 휘어져 있다. 휜 나무를 골라 알맞게 잘라 사용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부엌 문지방은 휜 나무를 구하기 어려웠는지 가운데를 도구로 깎아 내려 주었다. 안채와 부엌은 여인들의 공간이다. 문지방 가운데가 낮아진 만큼 긴 옷을 입은 여인들이 드나들기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충남 논산의 윤증(尹拯) 선생 고택에는 집 전체를 감싸는 담장과 대문이 없다. 가장 앞에 배치된 사랑채는 외부로 노출되어 있고, 사랑채 옆에 안채로 들어가는 안대문이 있다. 안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내외담이 가로막는데, 아래는 바닥에서 약간 들려 있다. 내외담이 들어서는 사람의 시야를 가리니 주인과 객이 준비 없이 맞닥뜨리는 것을 막아 주고, 아래가 들려 안채에서 손님의 발이 보이니 일일이 물어보는 결례를 저지르지 않고도 손님의 상태를 대충 짐작하게 한다. 주인과 손님이 서로 예의와 염치를 차리면서 상황에 따라 준비할 여지를 주려는 장치다.

 대구 달성군 화원읍 남평 문씨 세거지의 수백당(守白堂)에서는 마당에서 대청에 오르기까지 다섯 단계를 거친다. 마당에서 섬돌 한 단 짚고 기단에 올라 댓돌 딛고 작은 퇴를 거쳐 비로소 대청에 오른다. 그러나 그 과정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편안한 보폭을 고려해 마당에서 대청까지의 폭과 높이를 조정했으니 ‘휴먼스케일’이 바로 이런 것이다. 주인의 섬세한 배려와 장인의 실력이 만들어 낸 곰살궂은 마음이 엿보이는 명작이다.

 댓돌과 섬돌을 발걸음 따라 맞춰 놓아도 나이 들면 대청에 오르내리기가 여의치 않다. 잘 못하면 낙상하기 십상이니 이럴 때 ‘안부자(安婦子)’가 요긴하다. 이름대로 노인이나 안방마님이 잡고 오르시도록 대청 상인방에 명주 또는 삼실을 꼬아 늘어뜨려 놓았다.

  휴게소 화장실에서 마주친 감동이 한옥에 스며 있는 사람을 위한 작은 배려들을 떠오르게 했다. 휘어 내려간 문지방이며 내외담, 섬돌, 안부자는 다른 고택에도 얼마든지 있으며, 한옥에서 사람을 위한 마음 씀이 어찌 이들에서 그치겠는가.

 현대의 집짓기가 점점 겉모습을 크고 화려하게 꾸미는 데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배려받고 있는 것일까? 집안 전기 스위치의 위치는 인체의 조건과 움직임의 경향을 충분히 파악한 결과인가? 현관문 열면 집안이 온통 들여다보이는 우리의 아파트 실내를 슬쩍 가리고 열어 변화와 품격을 주는 것은 어려운 일일까? 실내에 최첨단 시스템이 깔리는 것이 정작 실생활에는 얼마나 도움이 되는 걸까? 크기나 화려함보다는, 작아도 진정 사람이 배려되었음을 느낄 때 우리는 감동한다.

장명희 한옥문화원장